아우에게 (10.01.25)-새벽 단상2010.01.26 08:27 2010.01.25.월.맑음. 새벽 단상 오늘 새벽, 쌩고롬했다. 하늘은 아직 열리질 않아서 거무튀튀하고 바람 끝이 싸하다. 모자를 둘러쓰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나 어렸을 적 조부께서는 새벽이면 군불을 때주셨다. 그래서 새벽 잠이 맛있었다. 쇠죽을 끓이시는 손길이셨으나 아마 곰실곰실한 손주 녀석들에게 뜨끈뜨끈한 이불 속을 만들어주시는 재미도 있으셨을게다. 온돌방이 다 타들어가도록 아랫목을 데워주셨다. 추운 겨울이면 창호지 한 장으로 바깥 한기를 막아내는 한옥의 작은 방에서 형제들이 잤다. 큰 방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품속에서 팔베개로 한바탕 잘 잔 동생들도 새벽이면 작은 방으로 달려오곤 했다. 큰방은 이불을 다 걷어버리고 식탁을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벽 작은 방은 격전지가 된다. 한 이불 속에서 서로 따수운 곳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불을 서로 잡아당기거나 온기를 찾아 몸을 굴리고 또 굴렸다. 곰의 겨울잠처럼 본능이 지배하던 시절, 그 시절이 그립다. 쇠죽 솥 이야기. 엑소더스 사건 하나. 60대 말이나 되었을까. 문익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까. 어느 날 곡성 시절 쇠죽 끓이는 통에 문익이 발이 빠진 사건이 있었다. 큰 방에서 작은 방으로 건너오는 중간에 쇠죽 부엌이 있었다. 새벽 온기를 찾아 으레 큰방에서 작은 방으로 엑소더스를 했었던 그 때. 큰 쇠죽 나무 솥 뚜껑이 약간 열려 있었는데 이를 보지 못하고 뛰어 건너오다가 발이 들어가 버렸다. 난리가 났다. 소주를 붓고 물에 담그고. 문익의 발에 난 상처는 그 때문이다. 막내 정숙이도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쇠죽 끓이는 솥과 그 부엌 풍경은 이렇듯 아찔한 장면을 담고 있기도 하다. 다시 새벽 풍경을 살펴볼까. 아버지께서는 마당을 쓸고 계시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음식장만하시고 할아버지는 쇠죽 끓여 외양간으로 가시고 그러는 동안 머리에 수건을 두르신 할머니께서는 깻대를 태우시거나 왕겨 풀무질로 군불을 지피시고. 본디 음식 장만하는 부엌은 아낙네들이 차지하고 쇠죽 끓이는 작은 방에는 남정네 몫이었다. 어머니한테 부엌을 맡긴 할머니께서도 가끔씩 작은 방 부엌에서 군불을 지피시곤 했다. 지금도 불 때시는 모습이 눈에 훤하다. 날이 차서 손이 꽁꽁 얼 때면 부엌으로 내려가 할머니 곁에 앉아서 왕겨를 부엌 속에 던지거나 풀무를 돌리곤 했다. 그 벌건 왕겨더미는 마치 붉은 봉분. 예쁘게 타오르다 검은 잿빛으로 변해갔다. 다시 풀무질하면 다시 생명을 얻어 붉어지기를 끝없이 반복한다. 고구마를 던져 잘 익혀 호호 불어가며 손주 입에 넣어주시는 할머니는 오구감탕으로 내 어깨를 쓰다듬고 볼을 비벼 주시고. 마루에는 요강이 놓여있다. 요강 소리로 장유를 식별한다. 아이들 오줌 소리는 약하고 가늘다. 어른들 오줌소리는 굵고 강력하다. 요강이 넘쳐 마루가 흥건할 때도 있다. 잠결에 오줌을 누다보니 조준을 잘못해서 바깥에다 갈기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장남이라 요강비우는 일이 많았다. 할머니가 비워주시기도 하고 어머니가 비워주시기도 했으나 어쩌면 더 많이 하셨겠지만 어찌 내 기억에는 나만 요강당번이었던 것같이 생각된다. 요강은 뒷마당 오줌 장군이나 두엄자리에 비웠다. 오줌장군은 밭으로 지고 나가 온갖 작물에 영양분으로 공급이 되었겠지. 그런 요강이라도 한번 비워보면 좋겠다. 그 때 그 살림광경이 비록 빈한 했다 하더라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유년의 광경. 요즘에는 새벽잠이 맛있지가 않다. 새벽에 잠을 깨면 무슨 꿈을 꾸기 일쑨데 별로 뒷맛이 개운하질 않다. 상당히 오랫동안 그랬다. 따져보자면 침대에는 전기가 흐르고 그 힘으로 온기를 얻고 잠을 잔다. 그래서 나는 한번 깨면 새벽에는 다시 잠자리에 들어가질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이를 잊고 또 잠에 들어가서 꺼림칙한 꿈의 흔적에 후회를 하곤 해왔다. 오늘은 새벽 거리에서 할아버지의 기침소리, 아버지의 마당 쓰시는 소리, 할머니의 군분 지피시는 모습, 어머니의 부엌이 시공으로 되살아나온다. 군불 지피는 방, 커다란 온돌이 놓인 방 하나 만들어보리라. 그곳에서 곤한 잠에 들고 싶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가족 모두의 손길이 느껴지리라. 댓글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