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혁명도 필요 없는, 그 환한 하늘나라로 부디 잘 가시게나

길벗 : 최 종 수

아버지 없이
초등학교 졸업식장에 가야하는 큰아들
겨우 초등학교 일학년을 마친
막내의 초롱초롱한 눈동자 남겨두고
그대, 어찌 눈을 감을 수 있는가

이제 홀어머니가 된
엄마를 위로하기에는
고사리순같이 어린 두 아들
아버지 없이 살기에는
휑하니 커다란 폐교
창틀을 닦고 가훈을 달고
잡초를 뽑고 꽃을 가꾸던 동산
올 봄엔 누가 꽃씨를 뿌리라고
두 손 모두 관속에 가두었는가

그대가 애달던 모자세대가 되어버린
당장 단칸방 얻을
통장 하나 없이
아내와 두 아들을 두고
어디를 가는가
그리 빨리 가야만 하는가

고무신에 막걸리 잔을 돌리고
대자보에 또박또박 혈서를 쓰던
노동해방이네 민족해방이네
노선 싸움으로 핏대를 세우던 동지들

제 밥그릇을 찾아
황금빛으로 피어난 무궁화
그 꽃잎 하나 가슴에 달고 떠난 자리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지키던
그 자리 비워두고
그대, 어찌 눈을 감을 수 있는가

맹세를 잊은 벗들
그리도 안타까웠나
다른 길을 가느라 바쁜 동지들
그렇게도 보고 싶었나
비로소 죽음으로 죄다 끌어 모으고
우리들에게 왜 연대하라 외치지 않는가

앞산 뒷산에 진달래 피는 봄이면
새만금 갯벌에서 죽어갈
조개와 백합을 버려두고
어찌 눈을 감을 수 있는가
그대, 어찌 핏빛 노을처럼 사라지려는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비정규직
무상의료 무상교육
인간다운 세상의 피를 빨아먹는
이윤과 자본의 흡혈귀를 향한 투쟁을
어디에 남겨두고
그리 서둘러 새벽길을 걸어가는가

하나뿐인 지구
수십억의 굶주린 민중들
벼랑으로 떠미는 악의 뿌리 WTO
송두리째 뽑아낼 혁명의 무기를
어디에 챙겨두고
어찌 그리 바삐 가는가

그대의 산맥같이 우렁찬 구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제 영영 다시 들을 수 없는가
그대의 활화산같이 뜨거운 노래는
또 어디에서 메아리치겠는가
그대가 몸으로 보여 준 불굴의 삶은
또 어디에서 푸른 희망으로 피어나겠는가

운동은 말도 아니요
주장도 논문도 아니요
운동은 단지 그 자체 삶이라는 것을
눈보라 밤길을 홀로 헤쳐
뚜벅뚜벅 말없이 걸어가는 길임을
마침내 죽음으로 껴안아 절규하는
우리 모두의 벗이여 동지여 잘 가게나

그대가 맨몸 맨 정신으로 보여준
투쟁의 올곧은 길을 따라
우리 튼튼한 어깨동무로 나아가
그대의 굳건한 희망으로 살리니
우리 목숨 다하는 날
그대가 꿈꾸던 해방의 미소를 안고
우리 다시 하나로 만나세
벗이여 동지여
우리 가슴에서 다시 뜨겁게 부활하게나

갯벌을 막는 개발도 없고
정규직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차별도 없는
허리에 꽂힌 삼팔선 철책도 없는
파란 하늘을 난도질하는
스텔스 미군 폭격기도 없는
그대가 그렇게 꿈꾸던
혁명도 필요 없는
그 환한 하늘나라로 잘 가게나

동백 꽃송이처럼 여린 두 아들이
벌써 그리울 다정했던 벗이여
녹차향처럼 따스하고 고운 아내가
벌써 그리울 우리 모두의 동지여
인간다운 세상을 향한 끝없는 싸움을
자신의 온몸의 삶으로만 보여 주길 바랐던
우리의 꽃다운 벗이여 동지여 부디 잘 가시게나
그 환한 하늘나라로 부디 부디 잘 가시게나

2006. 2. 11. (토)

조문익 열사 영결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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