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장례식장에서 죽음을 통해 배우는 삶
유언장 쓰기와 <이름있는자동차>운동

    전희식(nongju) 기자    


고 조문익님의 49재가 열렸을 때였다. 원불교 효자교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내가 보기에 죽음을 배우러 온 사람들이었다. 죽음을 배움으로써 비로소 삶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환경에서도 배움은 각자의 몫 일 뿐이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일이다. 천도제 참석자들이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배웠는지는.



▲ 고 조문익님의 천도제  

ⓒ 전희식

세상의 미래를 논하고 먼 나라에서 온 이주여성들의 삶을 보듬어 안던 조문익이 정작 자기 일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했듯이 죽음은 삶과 이어져 있으되 우리는 그것을 평소에는 알지 못한다.

효자교당에 모인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채식뷔페로 이동하면서 조문익을 죽인 흉기, 각자의 자동차를 타고 몰려갔다. 채식뷔페의 주차장만으로는 주차공간이 부족하자 자동차들은 길가에 늘어서기 시작했다. 길의 점령군, 길의 흉물, 길의 암세포인 자동차를 보는 심정은 조문익의 죽음만큼 안타까웠다.

이미 우리는 조문익을 잊은 것은 아닐까? 조문익이 말로도, 글로도 전할 수 없어 죽음을 통하여서만 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조문익의 장례식장에서 5일을 지내는 동안 나는 조문익의 전언을 듣고자 했다. 그가 죽음을 통하여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그의 영정 앞에서 가부좌를 하고 몇 시간씩 명상을 한 것도 너무도 그가 그리워 환영으로라도 만나고 싶어서였다.



▲ 천도제에서 울먹이는 그의 동료  

ⓒ 전희식

천도제에서 김경일 교무님이 한 설법처럼 삶과 죽음은 눈 한번 떴다 감는 것이고, 낮과 밤이 바뀌는 것에 불과한 끝없이 이어지는 윤회의 한 단락에 불과하다면 분명 쓰고 싶은 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조문익이 그냥 침묵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명상 속에서 제일 먼저 떠 오른 것은 아무도 자기 말을 알아듣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조문익의 모습이었다. 물론 내게도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좀 가만히 있으라고, 너는 죽었다고 말 해 주었으나 조문익은 뭔가를 계속 말했다. 황망히 장례식장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했다. 잠시도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조문익을 찾는 심정으로 나도 장례식장 안팎을 배회했다. 이때 전혀 새로운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의 내 상식과 행동을 거역하는 것들이 내 시선에 잡힌 것이다. 제일먼저 펼침막에 쓰여 진 '사회혁명의 붉은 깃발'이라는 글자의 페인트 점액에 조문익이 말라붙어 있었다.

자유롭게 훨훨 나는 나비를 낚아 챈 거미줄처럼 그 '사회혁명의 붉은 깃발'로만 규정될 수 없는 조문익을 붉은 깃발(丹旗)이 가두고 있었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다짐하는 전교조와 의료보건 노조들의 펼침막들을 보는 기분도 매한가지였다.

장례식장 입구가 모자라 다른 방 복도까지 꽉 늘어 선 조화들의 운명이 숨을 막히게 했다. 며칠 후면 쓰레기가 될 저것들은 보내면서 적어 넣은 이름 석 자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무엇보다 유명한 재야운동가인 한 아무개 목사님과 민주노동당의 단 아무개 국회의원 이름을 발견하고 나는 낙담했다. 꼭 한 달 전 내 사돈의 영안실로 저 만한 조화를 보냈던 나이고 보면 내 낙담은 참 천연덕스러웠다.



▲ 고 조문익님이 썼던 글을 옮겨 적은 추모 휘장  

ⓒ 전희식

내가 비운 깡통맥주가 맥없이 쭈그러져 대형 비닐봉투로 들어갔다. 음식을 진열했던 밥상위의 비닐보가 쉴 새 없이 남은 음식물과 함께 뭉뚱그려져서 쓰레기봉투로 직행했다. 삶에 바빠 죽음을 모르고 사는 내 무지와 어리석음이 보였다. 한 사람의 죽음에 저토록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꼴을 보고 조문익은 입을 다물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종이쪽지를 꺼내 내 유언장을 만들어봤다. 죽음을 준비 할 시간이 조문익에게 있었다면 분명 이런 식의 장례식장은 해당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눈깔 하나 콩팥 하나도 그냥 불태우지 말고 그것이 없어 절망하는 이들에게 고이 넘겨달라고 썼다. 사는 동안 간 한 조각 창자 한 토막도 함부로 막 쓸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내 장례에 대해서도 썼다.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말고 1년 기일에나 그때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일 수 있도록 썼다.

조문익의 목숨을 앗아 간 제설차가 떠올랐다. 눈 덮인 도로의 안전을 위해 나선 제설차가, 도로의 평화와 생명을 위해 나섰던 그 자동차가 도리어 조문익을 죽였다는 사실은 생각 할수록 그런 이율배반이 없었다.

조문익의 죽음에서 나는 <길 위의 생명평화 - '이름 있는 자동차'>를 생각했다. 그때의 생각을 가다듬어 카페를 만들었다. '다음'에 만든 카페는 '이름있는자동차'다. 이와 관련된 글은 이곳 <오마이뉴스>에도 쓴 적이 있다.

49재. 임종의 순간 최초의 투명한 빛에 이끌려 이 세상과 저세상의 틈새인 '바르도'(중음)의 세계에서 일곱 개의 등급 각각의 일곱 단계를 거쳐 조문익은 새 생명으로 세상에 날 것이다. 그 조문익은 세상 만물이다. 조문익을 우리 다시 죽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유언장과 '이름있는자동차'운동을 통해 생전의 조문익처럼 세상과 인민을 위로하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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