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에게 (09.11.07) - 고이도 홀로 기행2009.11.08 08:48 2009. 11. 07. 토. 맑음 고이도 홀로 기행 오늘 오후 신안의 작은 섬 고이도를 홀로 다녀왔다. 무안 운남 신월 선착장에 차를 대고 5분 만에 건너간 고이도. 섬 이 곳 저 곳을 걸어서 한 바퀴 돌았다. 두 세 시간 걸렸다. 섬의 절반을 돌아다녔던 것 같다. 해안선이 20여 킬로미터인 작은 섬, 구릉과 갯벌, 손바닥 만 한 논밭이 주민의 삶의 터전. 섬 가운데 왕산이 해발 65미터. 개국공신 임에도 불구하고 고려 왕건으로부터 배척받은 그의 작은 아버지 왕망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문 닫은 초등학교 교정에는 아직도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보존이 비교적 잘되고 있는 운동장, 교사 이곳저곳에 여기를 거쳐 간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산기슭에는 꼬막 같은 집들이 파랑, 초록, 주황색으로 그림처럼 박혀있다. 언덕 산밭 이곳저곳에서는 아낙네들이 옹기종기 모여 양파모종이 한창이다. 한 삽 뜨면 딱 맞을 논바닥은 벼 포기만 덩그러니 남아 빈 들녘 그 자태 허허로운 가슴으로 청한 가을 하늘 품속에 안겨있다. 산기슭을 끼고 돌아가는 해안 길, 상록수 틈새 울긋불긋 단풍이 제법 가을을 느끼게 한다. 서북 해안은 손톱만한 모래사장을 자랑하고 있다. 여름철 이곳에 와서 천막치고 하룻밤 자고 가면 딱 좋을 듯싶다. 산등성이에 널찍한 밭들이 파헤쳐져 있다. 담다 남은 어린 아이 머리통만한 고구마들이 박스 옆에서 궁시렁 거리며 모여있다. 감나무가 한 그루 보인다. 대봉 네 알이 탐스럽게 걸려있다. 까치밥으로 주인이 남겨놓은 듯 한데 두 알을 챙겼다. 왼쪽 주머니에 한 개, 오른쪽 주머니에 한 개. 주머니가 두툼해졌다. 노무현 씨가 생전에 어느 직판장에선가 귤을 호주머니에 담는 장면이 생각나 웃음이 절로 난다. 나는 상념에 잠긴다. 슬로우 시티하고 어쩌고 하며 현대인의 빠른 걸음을 질타하며 한사코 천천히 문화를 찬양하는 기류를 타고 예까지 내가 온 것 인가? 전쟁 같은 저자거리를 피해 잠시 진공 상태에 홀로 남겨졌다. 모태 양수 속에 절대고독의 몸부림으로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이 보인다. 내가 가는 곳은 지금 어디인가? 아우성치는 사바세계의 굴곡진 삶들이 뒤엉켜 내 앞에 펼쳐진다. 아비규환의 질곡을 누가 만들어내는가? 어찌 진흙 탕 속에서 흰 발을 기대하는가? 홀로 걷는 길은 그래서 결코 홀로가 아니다. 홀로여서는 아니 된다. 사위가 적막하다. 바다를 막아 간척을 한 곳에서 대하 양식 등으로 손길이 바쁘다. 간혹 보이는 외딴 집 굴뚝에서 연기가 난 흔적이 보인다. 반갑다. 나그네는 길을 재촉한다. 해가 뉘엿뉘엿 다도해 속으로 들어가며 빛을 잃어가고 있다. 경운기에 비료 포대를 싣고 있는 아저씨한테 선착장 길을 묻는다. 내가 가는 방향이 맞다고 했다. 한참을 걸어 선착장에 도착했다. 5시 40분배가 막배다. 대하양식을 하시는 55세의 아저씨 한분을 만났다. 그는 건너 신월리 마을에 사신다. 배로 5분거리지만 헤엄쳐가면 한참 걸릴 그곳을 젊은 시절에는 그저 옷입은채로 왔다갔다했다며 힘을 자랑하신다. 헌데 지금은 100미터만 가도 헉헉거린다며 이제는 나이가 먹어 함부로 못한다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신다. 이렇게 맑은 곳에 사시니 좋겠다 하자 우리는 산이 좋다. 평생을 바다를 끼고 사니 계곡이 좋다며 내 고향을 묻는다. 지리산에서 왔다고 하자 더욱 반가와라했다. 그곳이 정말 좋더라고 순하게 웃으신다. 아들 둘을 두었는데 둘째가 현경고에 다닌다며 자랑스러워하신다. 목포나 도시로 보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아이가 많이 밝아지고 뚜렷해졌다며 학교에 고마워하셨다. 그가 내준 차 한잔과 손님들이 먹고 있는데서 자신이 양식한 대하 한 마리를 가져와 맛좀 보라고 내놓으셨다. 오독오독 참 맛이 좋았다. 여기에 또 오게 되면 찾아뵙겠다고 했다. 바다의 밤은 안온하다. 휘엉휘엉- 갯바람이 나그네의 등을 가볍게 두드린다. 나는 도시의 품속으로 다시 들어온다. 꿈에서 깨어난다. 댓글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