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아우에게 (09.10.29) - 묵천(墨天)

2009.10.30 06:25

조창익 조회 수:583

2009. 10. 29. 목. 흐리고 비가 내림

묵천(墨天)

새벽-
여명-

호천
묵천
넓은 하늘이 온통 검다
하늘 찢는
뇌성 벽력

영가위해 호곡하는 하늘
영가를 불러 올리는 소리
잠든
영가 깨어 나게 하는 저 소리

망자가
산 자 묶어 주는
호천 묵천
오늘

매우 특별한
하늘의 조화

-(오늘 하늘은 새벽부터 검었다. 오후 늦게는 호우가 되고 뇌성벽력이 천지를 뒤흔들고. 하늘도 호곡하는 날, 오늘 사랑하는 용만, 용훈 형제의 부친상을 기리며, 그리고 제자 박진석을 통해 재술 형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 날. 오늘. 귀한 제자도 다시 만난 날, 묵천이 준 선물 -)



06:00 하늘이 검다. 나는 이를 묵천(墨天)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파트를 한 바퀴 돌 때까지 눈알이 꺼끌꺼끌하다.

7시 경 용훈이가 전화했다. 부친상이시란다. 새벽에 운명하셨단다. 깜짝 놀라 되물으니 두 어달 고생 많으셨다고 한다. 알았다고 하고 여기저기 알리기 시작하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학교는 조용하다. 신종 플루가 휩쓸고 간 자리, 아이들 없는 학교에서 교사들은 아이들한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동정을 살피고 남는 시간은 잡담을 즐기면서 소일했다. 망중한, 쉬는 것도 노동이다. 점심시간이 되어 선생님들이 가사실에서 삼겹살 잔치를 준비하신다. 상추를 씻고 고추와 마늘을 썰어서 상차림을 하고 있다.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그럴 듯 했다. 10 여명이 모여 한 밥상을 함께 즐기니 공동체라는 말이 어울려 보였다.

나는 후딱 배를 채우고 도청 앞 강진 의료원 동지들을 찾아 나섰다. 윤부식 동지, 택시, 앳되어 보이는 의료원 여성동지, 남성 동지 한분 이렇게 넷이서 새롭게 만든 31일차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도청 직원들은 빈번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힐끗 눈길 한번 던지고 사무실로 들어서고있었다. 저렇게 많은 이들이 바깥에서 식사를 다 해버리면 지하 식당 3천원 짜리 식사는 누가 하누?

해남. 민주노총 사무실. 1시간이 채 못 걸렸다. 부지런히 달려왔다. 오후 2시가 못되었는데 역시 하늘이 낮고 어둡다. 비도 한 두 방울 떨어진다. 전남본부 운영위원회. 성원이 되어 안건토의에 들어가고 논의를 진행하길 두 어시간이 지났다. 각종 보고 시간에 전남 지역 노동운동 현안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상세한 내용은 생략하고자 한다.

회의가 끝나고 심종섭 광전 금속지부장과 동승하고 옥천 백호리로 향했다. 땅거미가 지는 5시 쯤. 심 지부장의 집이 있는 곳. 그는 서너해 전에 귀농하였다. 3천여평의 땅을 매입하여 자급자족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4백평 가까운 대지에 허름한 농가주택을 개조하여 살 집을 마련하였고 생전 농사라곤 모르는 사모님께서 농삿꾼이 되어 하루하루 농사짓는 재미가 쏠쏠하시다고 한다. 막 들어서니 빗방울이 후두둑 설레발친다.

나락을 담고 있던 사모님, 반가운 기색을 표하실 틈도 없이 하시던 일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거들고 심 지부장도 옷을 갈아입고 부지런히 빗방울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전에 가마니를 창고로 옮겼다. 본격적인 농사꾼 솜씨는 분명 아니다. 부부는 그러나 참 원만하고 평안한 모습들이다. 자연스럽다. 들꽃 같은 부부다. 나락 10 여가마니를 옮기로 깔판 정리하고 나니 빗방울이 굵어져버렸다.

심 지부장은 감 나무에서 잘 익은 홍시를 따서 내게 가져다 준다. 참 맛이 좋다. 어제 많이 따서 보낼 사람한테 보내고 이제 몇 개 남지 않았는데 시골 사는 재미는 이렇게 최고 싱싱한 과일이며 채소 먹는 것 아니겠는가? 부부는 내게 약초 즙을 내놓았다. 집에서 십수가지 발효액을 제조하여 시장에다 내다 팔기도 한다는 것. 참 소박하지만 알찌게 사신다.

처마 밑 마루에 걸터 앉아서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보니 중학교 다니는 둘 째 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학교수업이 다 끝나고 승강장에서 기다린다는 것. 사모님께서는 내게 잘익은 단감이랑 닭들이 산바람 쐬며 낳은 계란하며 듬뿍 담아 주신다. 아니 이런 횡재가 없다고 하니, 다음에 또 오시라고 말씀하신다.

내 보기에 심 지부장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매우 특별한 삶을 선택한 사람이다. 다니면 고2 정도인 큰 아이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둘째는 아들인데 옥천중에 재학 중이다. 바깥은 이미 깜깜하다. 묵천이 이젠 천하가 진묵이다. 구불 구불 그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나섰다. 옥천 승강장에 도달할 때는 빗방울이 왕방울만해져있었다. 그와 작별하고 나는 정승민을 생각하며 옥천길을 운행하고 있었다.

정승민, 전화를 했다. 계수 박 선생이 아프다. 아이도 아파서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그와는 참 특별한 인연으로 해남생활을 했었다. 벌써 해남을 떠나 온지 6 년이 되었다. 세월의 힘은 강하다. 무얼 로도 막아설 수가 없다.

19:00 목포중앙병원. 장례식장. 들어서려 하니 김종승 동지가 기다리고 계신다. 3층이다. 도착하니 여럿이 보인다. 정문균 선생이랑 정종삼, 한성중, 김종승 이렇게 함께 참배하고 상주와 인사를 나누었다. 차용만 차용훈 형제. 아버님을 잃은 슬픔은 안에다 담고 반겨 손을 잡는다. 산사람이 떠난 사람 앞에서 웃고 반가움을 표하니 평안하다.

산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논다. 죽음과 삶이란 본시 이렇듯 하나다. 해남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했던 원천이 기다리고 있다. 앞에는 영효 형이 앉아 계시고 월향이도 달처럼 환한 얼굴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주탁이는 비가 오니 오늘 오지 말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오늘 알았으니 오늘 와야 한다면서 내가 도착하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동석하게 되었다. 왼쪽으로는 주탁이 앉고 오른 쪽에는 원천이 앉고 앞에는 월향, 영효 형 이렇게 판이 짜여져 식사를 하고 떡도 먹고 시간은 잘도 갔다.

영효 형은 이제 장흥 안양 사람이 되었다. 그는 산속으로 들어가 움막을 짓고 있다. 목포 들어오는 길에 폐차장에 들러 온돌 구들장 놓는데 소용되는 덤프트럭 하체 완충작용하는 스프링도 몇 개 구입했다고 한다. 이걸로 집짓는데 쓴다. 둠벙도 복원하고 자갈 등속 골재도 지게로 실어나르고 그는 동네 사람보다 더 바쁘게 생활하며 지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다. 천성이 부지런하기 그지얺는 그로서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는 기인이다.

아무튼 그와 함께 있으면 하도 입심이 좋아 대화가 일방적이므로 틈을 비집고 말총을 쏘아야 한다. 내 말일 들어갈 틈을 잘 찾아서 열심히 대화에 직구를 날려야 한다. 청계중 해직동지가 아니던가. 먼저 떠난 재술 형, 준승 형. 이제 남은 사람은 영효 형과 나. 둘 남고 둘 죽고. 인생이 무상하다.

원천도 가고 영효 형도 가고 월향도 가고 재성도 가고, 정수도, 규학이도, 찬길이도 가고.  주변사람들 많이 갔다. 주탁과 나만 남았다. 교원평가 걱정된다. 사회적 협의체 들어가자는 위원장, 지부장들 많다고 한다. 대의원대회에 넘겼는데 이런 지경이면 교원평가 들어오는 것은 순식간이다. 교찾사도 막아나설 여력이 없는 듯 하고. 어떻게 해야하나.

김성준의 기개로 다시 투쟁이 전개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이런 저런 걱정 나누다가 중앙병원에 입원중인 대불임금체불투쟁의 대명사가 된, 독수리 오형제 오동길 동지 문병에 나섰다. 그는 이미 미래병원으로 옮긴 뒤. 몰랐다. 주탁이한테 심 지부장이 준 옥천 계란이랑 단감이랑 절반 분양하고 그를 광주로 보내고 나서 나는 미래병원으로 들어갔다.

오동길 동지는 오른 쪽 발등을 다쳤다. 기나긴 여름 투쟁 이후 다시 입사한 지 이틀 만에 생긴 사고였다. 10 미터 짜리 철근 넘어지면서 발등을 찍었다. 발가락 부위가 으스러져 치료 기간이 상당히 길어지고 있다. 내년 초까지 가봐야 한다고 한다. 산재처리가 되어 다행히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는데 젊은 몸이 발 부상으로 병원생활 한다는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또 어제는 대불노동자 대회에 참석했다가 다시 화장실에서 설상가상으로 발등이 더 아프다. 그는 워낙 낙천적이어서 난관을 잘 극복하리라 본다. 한사코 따라나서는 그와 아래층 현관까지 나와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래병원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곳에 남도택시 농성장이 있다는 말에 그는 눈을 크게 뜨면서 그러느냐고 그런데 왜 농성장이 그렇게 조용하냐고 되물었다. 안에 들어가면 상당하다고 시간내서 한번 들러보라고 말했다.

이제 밤 11시가 되었다. 비가 그친 가을 밤하늘에 바람이 휭 허니 불어간다. 오 동지를 뒤로한채 나는 남도농성장으로 향한다. 동지들 대여섯이서 파안대소하고 재미나게 담소중이다.

영진택시에서 위문나온 박진석 이라는 분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장재술 선생이 나오고 청계중이 나왔다. 알고보니 그는 88년 당시 중1이었던 나의 제자였던 것. 나는 3학년 담당이었으므로 내가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다. 깜짝 반가와 다시 악수를 했다.

재술 형이 운명을 달리 하셨다는 말에 참으로 서운해했다. 특별한 몇 조각의 기억들을 말했는데 누나 아팠을 때 병문안까지 오셨다는 이야기, 늘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걱정해주었다는 말, 재술형 닭 농장에 가서 닭 서리한 이야기, 자신이 유도에 관심 있어 하니 니가 할 수 있으면 뭐든지 도전해보라고 했다는 말 등등 선생님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졌다.

재술 형은 좋은 선생님이셨다. 그는 옆 택시동지들의 강한 권유에 민주노동당 가입원서에 입당원서까지 작성했다. 박현숙 재술형수님의 근황도 물어와 연락처를 알아내서 알려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오늘 밤 제자를 만나게 되었다.

자정이 넘어서고 있다. 오늘 참 여러 군데를 돌고 돌아 다녀왔다. 열심히 걸었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이렇게 저렇게. 그러고 보니 고은 선생의 산문집 제목이다. 오전 내게 전달된 책 두권. '오늘도 걷는다'. '개념의 숲'. 고은 선생의 최신작. 최근의 심경을 느껴볼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올 가을, 내가 선택한 책이다. 알라딘에서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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