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아우에게 (09.10.10)-휴휴

2009.10.11 01:40

조창익 조회 수:455

휴휴

나들이 하기 좋은 날, 나는 집안에만 박혀 있었다. 서울간 동지들 생각하며 빈둥빈둥 놀았다. 늦은 오후녘 아들과 담소하며 삽겹살을 구워먹었다. 아들은 내가 매사에 너무 진지한게 탈이라며 십이간지를 들먹이며 협박을 한다. 좀더 가벼워지라고.

신경림 시집 '농무'를 뒤적거렸다.

달빛

밤 늦도록 우리는 지난 얘기만 한다.
산골 여인숙은 돌광산이 가까운데
마당에는 대낮처럼 달빛이 환해
달빛에도 부끄러워 얼굴들을 가리고
밤 깊도록 우리는 옛날 얘기만 한다
누가 속고 누가 속였는가 따지지 않는다
산비탈엔 달빛 아래 산국화가 하얗고
비겁하게 사느라고 야윈 어깨로
밤 새도록 우리는 빈 얘기만 한다.

그는 농민, 노동자, 광부, 상인이었다. 그의 시는 민중의 목소리 그 자체였다. 그가 35년생이므로 현대사 구석구석 험한 세상 온갖 고초 다 겪었다. 그렇다고 모든 이가 그처럼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기꺼이 걸어온 것은 아니다. 그의 시 속  징, 꽹과리 소리가 우리 어릴 적 몽환상태로 인도한다.

-. 며칠 전에 서실 선배이신 소정한테 연락이 오기를, 오늘 자유시장, 코끼리 식당. 서예스승이신 선생님께서 점심을 내신다고 했다. 문하생들이 모였다. 이십대부터 팔십대까지 다양하다. 신입회원 부부에게 호가 내려졌다. 유달산 아래 사시는 분들인데 남편은 유암(儒岩) 아내에게는 명원(茗苑). 개인전을 준비하시는데 내게 사진을 부탁하셨다.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의 문하에서 서성댄지 벌써 3년째가 되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 40년 서력의 그가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신다. 평생 붓으로 사는 그가 몇 해전 양주 한병을 한 자리에서 그대로 마시고 세상을 하직하려했다는 일화를 들려주셨다. 어찌 애환이 없으랴. 처음 듣는 말이라 머리 속이 찡하니 울려왔다. 입문 시절 그와의 조우 장면을 서도일기로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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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일기 2007년 4월 14일  下化 上求의 3주(1)

書가 藝이고 道인 까닭, 아직 잘 모른다. 다만 앞선 스승의 下化과정을 탐색하고 上求의 자세를 가다듬을 뿐이다. 선생님께서는 절대 過하지 않게 私事하신다. 한점 한획 불안하고 미심쩍겠지만 그는 한번 훑고 그 중 한둘만을 골라 지적하시고 示範을 보이신다. 나는 매번 알몸을 드러내보이는 것처럼 부끄럽고 조심스럽다. 선생께서는 이를 잘 아시는 듯 늘 격려를 아끼시지 않으신다.

그의 權威는 온통 書歷 30년으로부터 나온다. 한 삶을 여기에 쏟아부었으니 書가 곧 生命이요 指向이다. 後學의 精進에 다만 기뻐하며 精中動의 맥박으로 세상과 呼吸하신다.

서예, 서도에 入門한지 3주가 되어간다
어제는 全紙를 받았다.  牧川 선생님으로부터 해서 28자와 내 이름 석자를 하사받아 두번 임사(臨寫)하였다. 선생께서는 다른 이들이 세달에 걸쳐 습득한바를 삼주도 채 지나지 않아 進度를 나가니 기특하다고 치하하며 계속 精進할 것을 주문하였다.

첫날, 그러니까 내가 목천 선생의 서실을 찾은 것은 우연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정문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서실이 자리잡고 있다. 벌써 4년 째 학교주위를 거닐며 몇번이고 살펴보았을 법하지만 어쩐지 들어갈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한번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긴 회랑의 왼편 벽에 커다란 서예작품이 자리잡고 있고 수석작품하며 묵향과 문방사우의 향취가 그득했다.
아무도 보이자 않아 서성대고 있는데 2층에서 누군가 삐걱거리며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천 선생이다. 그가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으셨다. 글씨를 배울수 있을까하여 들어왔다하니 올라오라하셨다. 2층 서실에서 차를 내놓으셨다. 재미나는 일은 얼마전 인천으로 올라간 김명란 선생의 작품이 실려있는 서책이 눈에 띄었다. 명란 선생도 목천 선생의 제자였다. 지척의 서실에서 많은 이들이 서도의 배움터에서 드나듦이 많았다.

그 후로 일주일 정도 나는 두세번 더 드나들면서 차를 마시면서 그의 문하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였다. 목천 선생은 이미 서도의 대가였다. 서력 30여년 동안 나라 안에서 큰 초대작가로서 이름을 떨치고 계셨다.

무엇보다 홍성국 선생이나 강승원 선생 등 나의 지인들과 교분이 있었으며 과거의 행적에서 지사적 풍모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것들은 외적인 요소이며 결정의 직접적인 배경은 나의 필력에 증진을 가져오기 위한 열정이라 할 것이다. 나는 서당에서 어렸을 적에 증조부에게 글을 배워서인지 나이가 들어 서도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부터 제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탁구나 수영, 테니스나 배드민턴도 초보단계에서 실력을 키우려면 레슨을 받지 않는다던가.
아무튼 나는 목천 선생의 문하가 되어 하루하루 서실에 나가는 재미가 붙었다. 그러나 시간투자를 많이 하지 못한다. 점심시간에 부랴부랴 식사를 하고 서실에 들러 한두장 적고 돌아와야하기 때문이다. (200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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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가 넘고 자정이 다 되었을 때, 주탁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광주에 도착했다고. 권혜경 분회장의 메시지도 도착했다. 동지들 고생이 많았다. 서울 투쟁은 새로운 징검다리가 되어야지. 전체 투쟁, 일제고사 체험학습 조직은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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