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2009. 10. 22 목  맑음

문규현 신부님, 어서 일어나세요.

문익아,
문규현 신부님 많이 아프시다.
의식불명이시란다.
오체투지 하시고 회복도 안되셨는데
용산문제로 단식을 강행하셨단다.
어제 갑작스럽게 쓰러지셨다.
세 해전 너를 보내는 자리
문 신부님은 너를 보내는 아픔을
조사 한 구절 구절 마다 담아
가슴 절절히 읽어 내려 가셨지
그때 만 해도 강건하셨는데
세상이 그를
오체투지 삼보일배로 내몰고
이제 급기야 의식이 불명이시니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아프다.
신부님의 쾌유를 빌어주길 빈다.
형님이신 문정현 신부님의 마음은
또한 얼마나 급하시겠나 싶으니
안달이 나는구나
신부님의 쾌유를 빌어주길 바란다.
문익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백기완의 새 책 이름. 한솔문고에 들렀다. 이십대였을까, 삼십대였을까, 그의 '자주고름입에물고-' 를 통쾌한 마음으로 읽었던 기억. 그가 군부독재 시절 자기 책 읽고 후련해했던 그 젊은이들이 다 어디 갔느냐며 한탄해했다던 어느 신문 구석에 난 글귀를 기억한다. 그는 과연 이 시대 최고의 알짜배기다. 군살 없이 기름기가 쫙 빠진 알맹이. 책읽기가 잘 안 된다. 순우리말이 껄끄럽다. 도무지 알아먹기 힘들기에. 백기완은 일평생, 그의 표현대로 '한살매'를 우리 몸 속, 머릿 속, 문화 속에 너덜거리는 일제 미제 식민과 제국의 썩은 찌꺼기들을 솎아내느라 바치신 것 같다. 동아리, 새내기 다 그가 발견하고 만들어낸 단어. 단어도 무슨 말로 바꾸어 놓았을 터 인데. 본디 우리말을 찾아 내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그러고 보니 그의 앞에 서서 새 삶을 얻는다.

그는 책 속에서 만나는 것보다 대면하고 우렁한 목소릴 듣는 기쁨이 더 크다. 대전 유성이었던가, 무슨 총회장소. 간단한 축사나 격려사를 일장 강연으로 되돌려 파격을 이끌어내서 진행자를 곤란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전국에서 모인 동지들과 본 안건도 다루기 전에 장이 파하게 생겼으니 쪽지를 집어넣고 하여도 막무가내, 오랜만에 동지들 보았으니 나는 할말 해야겠다고 나 내려보내지 말라고 하면서 그는 끝까지 말로 밀어붙이시는 것이었다. 그 똥고집이 실소를 자아내게 했었다. 그게 한 이 년 전 일이다. 그 자리에서 내가 선생님을 한번 목포로 모실 터이니 한번 내려와 주시라고 했다. 그는 불러만 주면 어디라도 가겠노라고 했다. 그래놓고 지금까지 모시지 못했다.

87년 그는 서울 자전거경기장에서 민중후보 추대식에 머리카락 휘날리며 나타났다. 그가 했던 말, '내가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를 남산 아래 판자 집 옆으로 옮길 거야. '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겠지만 인상 깊은 대목이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린 어떻게든 새로운 길이 필요했다. 민중후보추대식 자리, 나는 백기완 그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 그곳에 모인 5천의 군중을 기억한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걷고 있는가?

-오늘은 쇼킹한 날이다. 사변이 났다. 개회식 도중 체육대회가 취소되었다. 학교장이 연단에 서서 대회를 선언하려고 하는 순간, 특정 반 삼십 여 명 중에서 이십 여명이 집단으로 결석을 하고 어젠 스무 명 가까이 조퇴한 사실이 밝혀졌다. 대회는 중단되었고, 2학년은 즉각 귀가조치, 1,3학년의 대회 진행여부를 놓고 설왕설래하다가 결국 점심 식사 후 귀가조치. 참 황당한 씨튜에이션. 축제도 논의되었는데,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도달. 이렇게 되면 축제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는 판단인데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하루라도 아니 반나절이라도 자리를 마련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신종 플루 환자가 한 명이라도 발생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학교에는 41명의 고열환자가 발생했고, 6명은 확진여부 결과통보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은 난리다. 오늘 점심시간은 예선 오디션을 본다고 했기에 일부 아이들은 오디션을 보러왔다고 말한다. 연기가 결정되었다고 하니, 저희들로서는 잘된 일이네요. 조금더 연습할 수 있으니까요. 참 곤란한 장면. 이 아이들이 더 열심히 연습할 터인데 취소하면 안될 것 같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농성 38일째. 석양에 담긴 농성장이 붉은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최진호 차장, 박명기 국장과 동석했다. 여전히 오리무중. 시청 국장과는 사무실 문제를 가지고 항의하고 논의했는데 궁색한 입장을 호소하였다는 전언. 진호는 국장 가지고는 안 되니 시장을 독대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수만 남았다고 제안한다. 석양으로 들어가 석양으로 나왔다. 도시는 바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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