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아우에게 (10.02.28) - 아버지의 등

2010.03.01 23:59

조창익 조회 수:514

2010.02.28.일.

등 밀어 드리기

부모님과 월출산 온천에 다녀왔다. 아버님의 구부정한 등을 밀어드렸다. 어린 나이에 지게를 짊어지고 지리산 계곡을 넘나들던 소년, 70개 성상이 넘도록 평생 고생만하시던 저 어깨와 등허리에 힘겨운 삶의 역사가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도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근육은 아직도 짱짱해 보이셨다. 유유한 장강처럼 변함없는 분,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아버님은 내게 큰소리 한번 치신 적이 없으셨다. 어찌 아들의 부족한 면이 시시때때로 보이지 않았겠는가? 성장과정에서 보여준 서투른 순간순간마다 회초리를 들고 싶으셨을 게다. 하지만 아버님은 그럴 때면 기침 한번 하고 스스로 참고 넘어가셨다. 그러면 나는 이내 내 잘못을 깨닫고 자세를 곧추 세우곤 했던 기억이 난다.

난 우리 부모 덕에 이만큼 성장하고 꿈에 그리던 학교 교사로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유복하지는 않았더라도 가난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무던히도 노력하셨던 것 같다. 초등 시절 리어카를 끌고 읍내 장터에 가면 호주머니는 풍년이었다. 내 호주머니에는 얼마 안 되지만 늘 용돈이 들어있었고 친구들에게 기죽지 않고 인심을 쓸 수 있을 만큼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중고등학교, 대학 시절에도 나는 친구들을 몰고 집에 들이닥치기를 잘했다. 열 명도 넘는 친구들이 집에서 먹고 자고 놀기를 한만큼 부모님의 수고로움을 아랑곳 않은 철없는 소년이었던 나. 그럼에도 싫은 기색 한번 없이 아이의 성장을 도왔던 부모님께 다만 고마울 따름이다. 기다려주는 힘의 미학을 나는 배웠다. 흔들리며 나아가는 불안한 성장에도 소리나지 않게 박수치며 기다리는 진득한 사랑.

등을 밀어드리고 나자 아버지께서 내 등을 밀어주셨다. 나는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제 곁에 계셔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경운기 피댓줄에 오른쪽 약지와 소지를 잃으셨던 비운의 농사꾼. 지금도 장갑을 끼면 마지막 손가락 두 개는 바람에 흔들리는 아버지의 거친 손이 쉰 살도 넘은 아들의 등에 묵은 때를 밀어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게 등을 밀면서 쉼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주제는 조상들의 의연한 삶 이야기. 특히 오늘은 습재 할아버지에 얽힌 일화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일경에 의해 포위되어 생활하셨던 청학동 이야기, 그의 풍수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은 듣고 또 들어도 매번 새롭다. 참 신묘한 내력이다. 선조들의 반대로 신식 학교 근처에는 가보지 못하셨던 아버지, 세월이 흘러 90년대 어느 해 였을까? 익산의 어느 향교에서 일종의 총무역할을  맡았던 그가 어느 공덕비문을 준비해야할 임무가 주어졌다. 평소 박식을 자랑하던 어느 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맞이한 어떤 이에게 비문작성을 의뢰하였던 바, 거들먹거리기만 하고 전혀 진척이 없자 아버지께서 손수 공덕비문을 작성하셔서 회의를 통하여 공시적으로 채택하여 공인받고 김 모 씨의 공덕비를 건립하셨다는 일화를 말씀해주셨다. 나는 이 사실을 처음 듣고 내심 깜짝 놀랐다. 문장으로 비문을 완성하셨다는 그 실력에 놀라왔고, 학교교장의 거만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린 정황에 대하여도 재미나게 기억되었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붓글씨를 잘 쓰신다. 내가 어깨너머로 붓글씨를 써보고자 하는 것도 아버지의 가지런한 서체를 보고 느껴온 바가 클 것 이었다.

-광주에서 주탁이 저녁 6시 30분에 내려와 목포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평화광장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차를 마시고 이야기하면 시간을 보냈다. 밤 11시 기차로 그는 올라갔다. 너무도 소중한 인연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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