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행복한 운동을 위하여-유고집 발간 소식

2007.03.30 10:07

광장 조회 수: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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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운동을 위하여> 조문익 열사 유고집
추모 1주기, 3일 오후 5시 장수논실마을 학교에서


<가슴이 따듯한 혁명가 조문익 열사 유고집> 제목. 흰돌 강희남 목사의 친필로 쓰여졌다.
조문익 열사가 1주기를 맞아 <행복한 운동을 위하여> 유고집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이 책을 펴낸 사람들은 조문익 동지를 ‘행복한 운동론자’로 기억하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은 ‘사람들이 현재에 머물지 않게 하는’ 연대와 소통이 아니였을까.

그가 세상과 소통한 이야기들이 이 책에는 담겨져 있다. “홀연 떠난 너를 찾아 어디로 나설거나”라고 아우를 보낸 친형, 늘 그와 함께 했던 노동운동 동지들의 추모글이 눈시울을 적신다. 어느덧 1년이 그렇게 흘렀다.

유고집 머리글에 소개된 대로, 처음 글은 변혁운동에 대한 그의 사상과 이론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글이 실려 있다. 이어 ‘반성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일기와 서신 형식으로 남겨져 있다. 또한 노동현안, 정치현안, 지역현안에 대해 목소리 높였던 문제의식의 글들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관련글
·민주노동열사 고 조문익 동지 글모음



특히 노동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평화동 전주교도소에 몸을 맡겨야 했던 그는 새벽 시간 정신을 가듬어 선배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운동에 대한 자기 성찰 ‘폭력’ 대하여 성찰했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신뢰어린 연대와 투쟁의 현장에서 다시 보자는 것 이였고, 양심의 바다에서 나오는 ‘반폭력 실천행동’을 설파했다. 그는 이 편지에서 봄을 맞이하며 “창호지 문살 밖에 햇님이 벌써 환해지기 시작합니다”라고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했다.

그가 인생을 함께 하자던 가족들과 일구었던 이주여성노동자 관련 ‘논실마을 공동체’에 대한 글들이 끝 모를 추모에 잠기게 한다. 눈 쌓인 논실마을 학교 운동장에서 이주여성들은 그를 보내며 추모 노래를 불렀었다.

그곳에서 그가 떠난 지 1년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린다. 조문익민주노동열사 추모제(위원장 신동진, 염경석, 박종훈, 소순열, 박민수, 이광석, 이세우)는 3일 오후 5시 장수 논실마을 학교에서 ‘민들레 영토’ 추모행사를 갖는다.(문의전화 063-352-3362)



조문익 열사가 걸어온 길

1964년 전남 곡성에서 출생하였다.
오산초등학교, 남성중학교, 남성고등학교(문학동인 ‘청학’)를 거쳐 고려대 철학과 입학하여, 민주화운동으로 재적되었으나, 다시 전북대 철학과 입학하여 학생운동과 단기 조직활동을 시작했고 87년 6월 민중대항쟁에서 전북지역 학생운동지도부로 활동했다.

전북지역노동조합연합회와 민중회의를 거쳐 민주노총 전북본부에서 10년 이상을 간부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몸담으면서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사회운동에도 열정을 보여 고용실업대책전문도민운동본우와 전북노동열사추모사업회 활동을 했고, 열사투쟁과 관련하여 구속(집행유예 5년)되었다.

한일노동자 연대와 교류에도 누구보다도 헌신했고,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정책위원, 전북현장연대 운영위원장, 민중언론 참세상의 창간을 제안하고 (사)호남사회연구회 분과위원, 참소리 상임운영위원, 전북노동포럼(준) 준비위원회 등으로 활동하였다.

장수 논실마을학교에서 이주여성사업과 교육사업을 운영하다가 2006년 2월 7일 불의의 사고로 운명하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현선, 자 용화, 용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