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아우에게 (09.10.03) - 하늘이 열린 날, 문익에게

2009.10.04 01:25

조창익 조회 수:482

2009. 10. 03 맑음  하늘이 열린 날, 추석

추석날 문익에게

문익! 잘 있느냐? 개천절과 추석이 겹쳤다. 새벽바람이 싸하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제법 많은 이들이 새벽불을 밝혔다. 대나무 골, 대나무 숲에서 이파리 부딪는 소리가 아침 길을 연다. 아침 상이 풍성했다. 조율이시, 홍동백서, 반잔갱 누누이 되뇌였던 상차림, 단헌무축으로 차례상이 진행되었다. 은별이가 곱게 한복으로 갈아입고, 은율이가 귀엽게 재롱을 피운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다 흥겨워 하셨을게다. 증손주들 품 안고 싶으셨을게다. 프랑스 유학 중인 열 일곱 살 은비는 벨기에왕립국악원 대학 3년 과정에 합격했단다. 장한 일이다. 플롯 연주 실력이 인정받았단다. 언제나 듬직한 용화는 오늘 널 찾아 왔을 게다. 용화가 중 3 시절 수학퍼즐을 풀 때 관찰했던 그의 탐구력과 집중력에 감탄하고 감사했단다. 오늘 영묘원에 다녀왔다고 통화했다. 얼굴은 보지 못했다. 저번 만남에서 용창이는 개구쟁이 티를 벗어나 진지하고 격물치지하는 자세가 느껴지더라. 제대로 된 나침반 선물한다고 했는데 챙겨놓고 아직 건네지 못했다. 노르웨이 제 셀바스 컴퍼스 구해놓았는데.

용진이와 오늘 술 한 잔 했다. 주탁이가 놓고 간 전복을 한 접시에 올려놓고 또 어떤 이가 선물한 보이차를 따끈하게 데워놓고 부자간에 설왕설래 담소를 이어갔다. 용진이도 나처럼 술 한잔 부으니 금방 불콰하게 얼굴이 달아오른다. 침묵하다가 이내 말문을 연다. 요즘 아들은 시니컬하다. 제 아비가 매일의 삶 속에서 삼촌의 죽음과 함께 가고 있는 부분에 대하여 불안해하고 순전히 온 마음으로 동의하지 않고 있음이 확인되었지. 세상을 바꾸어내는 것이 지금으로 불가능한데 왜 이리 강경하게 저항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자본주의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느냐고 한국의 젊은이가 토해낼 수 있는 절규로 아비의 운동성과 그 방향을 질타하고 있었다. 그의 조부와 증조부의 지리산과 현대사에 얽힌 굴곡진 삶의 궤적에 대하여 온전하게 아직 받아들일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었다. 억압자들에 대한 죽임만이 해방으로 가는 길목이라고 했을 때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근본적 회의를 제기한다. 그래 바꾸는 방식을 함께 고민해보자고 했다. 죽음과 죽임이 필수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길이라면 어찌할 것인지. 무엇보다 가장 먼저 삶을 사랑하자고 했다. 이십대 중반의 그가 가지고 있는 고뇌의 무게가 느껴졌다. 좌절과 극복, 도전의 역사를 그는 처절하게 스스로 실험하고 있었다. 그의 늠름하고 화려한 귀환을 소망한다. 그의 어깨위에 드리워진 질곡과 궁극의 해방, 삶의 해방을 기원했다.

서녘햇살이 기운을 잃을 때 쯤, 남도택시 농성장은 썰렁했다. 우 분회장 혼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벌써 석달 째 월급이라고 해야 30만원 씩 받고 있다. 생활비도 못된다. 분회장이 져야할 몫이다. 사측에서 배차를 하지 않는다. 감당해야 한다. 분회장이므로. 조직과 깃발을 지켜야 하므로. 속이 쓱쓱 아려왔다. 그는 내가 가지고 간 포도도 제대로 맛을 보지 못한다. 당뇨기가 있어서다. 그와 전액관리제 표를 놓고 요모조모 살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합원들의 의견은 사납금과 전액관리제 중 후자로 모아졌다. 이제 관철시키는 일만 남았다. 기준표를 다시 작성해야 한다. 예컨대 매일 10만원 가량 입금한다고 했을 때 택시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임금은 약 230-250만원 사이. 조율이 필요하다. 사용주가 7시간 40분 명령을 내린 뒤 조합원들은 하루 입금액을 3만원에서 6만원 정도 사이에게 사납하고 있다. 회사측은 미칠 지경이다. 보통 8만-9만원이 기본인데 매출에 상당한 타격이다. 사장은 붉으락 푸르락 하고 있다. 기본급 72만원에서 빼낼 것인지 여부가 관건이다. 경과를 지켜 볼 일이다. 다음 주초 세차장 관련하여 소송에 바로 들어가기로 했다는 내부의 결정. 지칠 줄 모르는 달마대사-주변에서 그에게 붙인 별칭, 앉아 있는 모습이 정녕 달마가 맞다-. 우 분회장은 나와 함께 나란히 소파에 앉아서 오후녘 토막 잠을 청했다. 함께 잠을 자는 것도 동지애다. 심장과 머리를 함께 나누는 동지.

저녁 시간, 사랑하는 후배 주탁이가 찾아왔다. 싱싱한 전복을 한 상자 가지고 왔다. 묵지근하다. 늘 미안하고 고마운 후배. 미안한 것은 내가 보다 힘차게 나아가지 못한 부분에 대하여, 고마운 것은 무너지는 부분 함께 메꾸어 주는 따스함 때문에. 내가 존경하는 후배. 그의 치열함과 성실함에 대하여. 그리고 탄력 넘치는 문제의식과 추진력에 대하여. 친화력에 대하여 찬양하고 칭송한다. 내 삶속에서 그와의 만남은 그 자체로 커다란 축복이다. 주탁이는 계수씨랑 영화 한편을 감상하러 떠났다. 좋은 시간되시라 빌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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