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아우에게(2010.03.10) - 춘설(春雪)

2010.03.11 07:27

조창익 조회 수:516





2010.03.10.수.눈.

심술궂은 춘설

간 밤에 눈이 잔뜩 내렸다. 회오리 바람이 불고 완전히 딴세상이 되어 있었다. 어제 순천에서 장흥 강진 마량을 거쳐 고금, 약산도를 돌아올 때만 해도 사방이 봄맞이할 태세였으나 이제 다시금 겨울로 돌아가버렸다. 올 봄은 유난히도 더디게 다가온다. 겨울이 봄한테 제 자리를 내놓기가 그렇게도 서운한 모양이다. 마지막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부산 쪽에서는 휴교령이 내리고 난리가 났다. 원천이한테 전화가 왔는데 약산에 물이 얼어 섬생활 신고식 단단히 치루고 있다고 했다. 야속한 춘설의 심술은 예서 그치지 않는다.

이성수 전남본부 조직국장의 부친상. 나주로 향했다. 금속지회 장문규 지회장, 손민원 영암노동상담소장, 윤부식 국장과 나는 최진호 차장의 차량운전으로 나주장례식장에 도착했다. 평소 건강하셨던 고인은 향년 84세의 일기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셨다한다. 황망스런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유가족들의 충격이 컸던 것으로 짐작되는 것이 다들 힘들어하시는 모습들이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더욱 그렇다. 갑자기 날씨가 차가와진 탓이라고 한다. 이 국장의 굳센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언제 보아도 듬직한 전사의 모습인 그가 오늘은 애잔한 상주의 모습으로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장례식장 밖에는 눈발이 하나둘 흩날리고 있었다.

6시가 다되어 나주에서 다시 영암 대불공단으로 향했다. 민주노총영암군지부 정기대의원대회가 열렸다. 민점기 광주전남진보연대 상임대표와 장옥기 전남본부장 등의 축사와 격려사가 있었다. 나도 며칠전 적어서 올린 격려사를 참고로 간단히 말씀을 올렸다. 금속지회의 존재 그 자체로 절반의 봄이 왔다는 것, 나머지 봄은 우리의 단결투쟁에 달려있다는 것, 끝까지 투쟁해서 꼭 승리하자는 말.

진보의 재구성을 놓고 격론이 오고갔다. 지방선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조합원들의 정치적 선택에 대한 갈등과 고심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고성이 오고가는 격론이 진행되자 내빈으로 참석했던 일행들은 바깥으로 나왔다. 안에서는 계속 쩌렁저렁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김목 현 교육위원이 오셨다. 2003-4년 전교조 전남지부장. 이번 선거에서 교육의원으로 출마하신다. 힘껏 돕겠다고 말씀드렸다. 여기저기 동지들을 소개해주었다.


어머님께서 내려오셨다. 치과 치료를 받기 위해서다. 지난 주 의치를 끼웠고 내일은 정식으로 본치아를 교체하는 날이다. 새벽녘 모자가 대화를 나눈다. 어머님께서는 2009년도 내가 쓴 일기책을 밤새 보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문익이 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불러도 소용없어. 대답이 없어’하셨다. 사무친 말씀이시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으셨을거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잠이 안온다며 배추 김치를 담그시는 어머님의 손길을 나는 가만히 바라만보았다. 어머님께서는 또 말을 붙이신다. ‘죽을 때가 되면 곱게 죽어야 하는데 나이가 80이 넘으면 내 세상을 사는게 아니야. 딴 세상을 사는 거여!’하셨다. 아들은 덧붙였다. ‘엄마, 무슨 말이여. 엄마는 이제 청춘이여, 청춘. 지금부터 시작인거여. 뭔 소리 하는 거여! 다음부터는 그런 소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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