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아우에게(2010.03.03) - 춘래불사춘

2010.03.04 07:27

조창익 조회 수:573

2010.03.03.수.맑음

춘래불사춘

07:30 안개 자욱한 봄길, 아직 쌩고롬하다. 집을 나섰다. 신입생처럼 설레는 마음을 안고 교문을 들어섰다. 학교는 오늘 신입생을 맞이한다. 입학식장이 까르르- 웃음으로 가득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사부님과 가원 선생을 만나 학교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장어탕  값은 내가 치렀다. 사부께서 극구 내시겠다는 걸 겨우 말렸다. 식후 학교에서 걸어서 2분 거리인 서실로 돌아와 간 밤 낑낑대며 연습한 서산대사의 시, ‘양봉래에게’를 검사받았다. 몇 글자를 교정 지도받고 다시 내일 검사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전교조 지회 사무실에서 민중연대 회의가 진행되었다. 5기 평가와 6기 출범을 위한 중앙위원회 개최가 주요의안. 중앙위 정수문제를 놓고 민주노총의 제안은 단위노조의 대표를 다 위원으로 하고보니 너무 많아서 정족수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산별노조의 대표를 정해서 이들을 중앙위원으로 선정하자는 민주노총대표자회의의 의결사항을 제안하였다. 회의는 민주노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목포신안민중연대 중앙위원은 54명에서 40여명으로 조정했다. 예산안 심의과정. 우리 지역 전선운동의 살림살이가 겨우 1 천만 원 안팎에서 예정되어있다. 참으로 빈한하다. 상근자 활동비까지 포함해서 이 정도이니 매 시기 매 사안마다 조응하며 발로 뛰는 일꾼들의 자맥질에 형편없는 뒷받침이다. 예산안을 대폭 상향시키기로 합의했다. 수입 사업까지 포함하여 1600-1700 만원 선까지 올려 안을 다시 짜보자고 했다. 상근자들의 활동비는 최저생계비인 97 만원 선까지 맞추어 지급하기 위해 특별후원회원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후원대 조직화에 박차를 가해서 적어도 30후반의 활동가가 전선으로 뛰어들어 삶을 바치고 있는 결단에 대하여 최소한의 응대를 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사업계획안에도 손질을 가했다. 개조식에서 완성된 문장으로 계획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회의가 열렸던 전교조 지회 사무실, 그 자리에서 전태일노동대학 월례강좌가 열린다. 신인철 교수가 먼저 와서 대기중이었고 김승호 대표께서는 피곤한 몸으로 차에서 한 숨 주무셨다고 했다. 오늘은 2010 정세와 노동운동의 진로에 대하여 김 이사장의 강의가 진행되었다. 그리스 사태에 대한 분석글을 어젯밤에 번역하여 제공했다. 따끈따끈한 번역본이다. 전교조에서 홍정수, 김창현, 권혜경, 민주노총에서 김현우 철도지부장, 진보신당 최송춘 위원장, 임성주 집행위원장 부부, 김신주 당원, 무안농민회 임채점 전 농민회장 외 4명 등 10여명이 참석하였다.


열강이었다. 물 한컵 드시지 아니하고 두 시간동안 열변을 토하셨다. 유익한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꾸벅꾸벅 졸기도 하였다. 연일 강행군이라고 변명해보기로 하자.
끝이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해임상태인 김현우 철도지부장의 진지한 질문과 의견개진이 있었고 각자 소회를 피력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주 만나기로 결의하고 식당으로 옮겼다.

밤 10시가 되어 저녁밥을 시켰다. 11시가 넘어 식사가 끝났다. 김승호 대표와 신인철 교수는 인근 여관에서 기숙하기로 하고 참석자 일동은 각자 갈길로 떠났다. 전태일의 이름으로 다시 모이자는 결의를 확인하는 자리, 나는 동지들의 등뒤에 대고 이렇게 외쳤다. 우리 모두는 오직 ‘전태일’의 길로 간다. 봄이 왔으나 아직 봄은 오지 아니하였으므로. 춘래불사춘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