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아우에게 (09.12.11.금) - 또 하나의 길, 書道

2009.12.12 11:05

조창익 조회 수:547



2009.12.11. 금. 흐림

서도(書道)

사람 걷는 길이 매양
한 가지라.
목숨 걸어 걷는 길이 매양
한 가지라.

범사에 길 있도다
書에도 길 있으니
書道라.
道의 진수가 藝에 이르렀으니
書藝라.

法古創新-
님의 길에
서광비추라-

-2009.12.11. 목천 선생님의 두 번째 개인전에 부쳐-



<또 하나의 길, 書道>

-서도 30년을 정리하는 자리. 사부이자 서예가이신 목천 강수남 선생님의 두 번째 개인전이 목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동료 예술인, 강 씨 문중 등 가족 친지, 제자 수십 명 등 많은 이들이 참석하셨다. 나는 사진을 찍기로 하고 여기저기 피사체를 찾아 나섰다. 나이가 듬직하신 분들이 많다. 어제 나보다 사진실력이 나은 차용훈 선생한테 부탁하였던 바, 그가 나타나 많은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의 문하에서 벌써 추천작가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교봉, 가원, 해림, 소정 등이 선배작가로서 소치대전, 남농대전, 도전, 대한민국서예문인화대전 등을 통하여 우리 지방 서단의 중진 대열에 진입하였다. 그의 서력 30년이 가져다준 보배로운 결과라 하겠다. 서실은 가난하다. 목천 선생님의 서실은 그러나 묵향이 가득하다. 내가 들어설 때 스무명이 채 되지 못했는데 이제는 드나듦이 있기는 하나 육십여명에 이른다. 괄목할 만한 성장이 아닐 수 없다.
나도 그간 이러저러한 대전에서 입상도 하고 특선도 탔다. 선생님의 덕이라 하겠다.
소감을 말하자면 개인전에 축하객이 들어섰으나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뭔가 허전하고 한쪽 어깨가 썰렁했다. 방문객의 다과는 문제될 것 없으나 작품의 향기를 북돋아주는 선율도 빠져있고 전시장이 흑백으로 짜여져 있어 다소 무거웠던 측면도 있었던 듯 하다. 그래도 뭔가 허전하여 설움 같은 것이 배어나려 하였다.

서도 30여년의 투혼의 길이 무엇이었던가? 목천 선생님의 길이 다 비쳐지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뼈를 깎는 각고의 세월이 배태되어 있다는 것. 언젠가는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몇 해전에 불과 몇 해전에 양주를 한 병인가 두 병인가를 앉은 그 자리에서 벌컥 벌컥 마시고 죽으려 했다는 것. 글씨가 안 되니까. 생각대로 글씨가 써지질 않으니까. 시, 소설 등 문학가들이 밤새워 머리를 쥐어짜가며 생산 활동에 전력을 다하나 미진할 때 갖는 고통과 맞닿아있으리라. 서력 30년에 얽힌 하고 많은 사연들이 있겠다.

병풍이 갖고 싶었다. 아니 내가 써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게 있다면 반야심경 병풍. 전 구절을 정성스럽게 써내려가 작은 병풍으로 만들어 가까운 친지들한테 선후배들한테 선사하고 싶다. 실력을 부지런히 연마하고 난 다음에야 가능할 터 인데, 요즘처럼 붓 잡는 일에 게을러가지고 서야 턱도 없는 일이다.

-귀갓길, 남도에 들렀다. 아침 출근길, 집에서 챙겼던 토마토 한 박스를 계단을 올라 들어서니 박명기, 최진호, 조영규, 백동규 등 4인 지역 상근활동가들이 목하 회의 중. 목포무상급식추진위원회 실무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속도와 폭, 전술 등을 가지고 논의하며 궁리하는 자리, 나도 동석했다. 그 사이, 택시 한장백 동지가 토마토를 씻어가지고 가지런히 내놓았다. 나는 다음 주말에 민중대회가 있는데 초점없이 가고 있는 것 같아 사전조직화 작업이 진행되어야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여 중간에 선전전을 펼치기로 하였다. 월요일엔 민중연대대표자회의, 남도택시기자회견을 다음 주 수요일에 갖기로 했고, 목요일엔 교육연대출범, 택시 동지 연대의 밤, 그리고 전교조 지도자문위회의 등등의 일정이 앞에 놓여있다. 다음 주도 날마다 행사나 회의가 잡혀있다. 양질전화를 위한 행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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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일기 2007. 04.14  下化 上求의 3주(1)

書가 藝이고 道인 까닭, 아직 잘 모른다. 다만 앞선 스승의 下化과정을 탐색하고 上求의 자세를 가다듬을 뿐이다. 선생님께서는 절대 過하지 않게 私事하신다. 한점 한획 불안하고 미심쩍겠지만 그는 한번 훑고 그 중 한둘만을 골라 지적하시고 示範을 보이신다. 나는 매번 알몸을 드러내보이는 것처럼 부끄럽고 조심스럽다. 선생께서는 이를 잘 아시는 듯 늘 격려를 아끼시지 않으신다. 그의 權威는 온통 書歷 30년으로부터 나온다. 한 삶을 여기에 쏟아부었으니 書가 곧 生命이요 指向이다. 後學의 精進에 다만 기뻐하며 精中動의 맥박으로 세상과 呼吸하신다.

서예, 서도에 入門한지 3주가 되어간다.
어제는 全紙를 받았다.  牧川 선생님으로부터 해서 28자와 내 이름 석자를 하사받아 두번 임사(臨寫)하였다. 선생께서는 다른 이들이 세달에 걸쳐 습득한바를 삼주도 채 지나지 않아 進度를 나가니 기특하다고 치하하며 계속 精進할 것을 주문하였다.
첫날, 그러니까 내가 목천 선생의 서실을 찾은 것은 우연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정문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서실이 자리잡고 있다. 벌써 4년 째 학교주위를 거닐며 몇번이고 살펴보았을 법하지만 어쩐지 들어갈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한번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긴 회랑의 왼편 벽에 커다란 서예작품이 자리잡고 있고 수석작품하며 묵향과 문방사우의 향취가 그득했다. 아무도 보이자 않아 서성대고 있는데 2층에서 누군가 삐걱거리며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천 선생이다. 그가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으셨다. 글씨를 배울수 있을까하여 들어왔다하니 올라오라하셨다.  2층 서실에서 차를 내놓으셨다. 재미나는 일은 얼마전 인천으로 올라간 김명란 선생의 작품이 실려있는 서책이 눈에 띄었다. 명란 선생도 목천 선생의 제자였다. 지척의 서실에서 많은 이들이 서도의 배움터에서 드나듦이 많았다.

그 후로 일주일 정도 나는 두세번 더 드나들면서 차를 마시면서 그의 문하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였다. 목천 선생은 이미 서도의 대가였다. 서력 30여년 동안 나라 안에서 큰 초대작가로서 이름을 떨치고 계셨다. 무엇보다 홍성국 선생이나 강승원 선생 등 나의 지인들과 교분이 있었으며 과거의 행적에서 지사적 풍모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것들은 외적인 요소이며 결정의 직접적인 배경은 나의 필력에 증진을 가져오기 위한 열정이라 할 것이다. 나는 서당에서 어렸을 적에 증조부에게 글을 배워서인지 나이가 들어 서도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부터 제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탁구나 수영, 테니스나 배드민턴도 초보단계에서 실력을 키우려면 레슨을 받지 않는다던가. 아무튼 나는 목천 선생의 문하가 되어 하루하루 서실에 나가는 재미가 붙었다. 그러나 시간투자를 많이 하지 못한다. 점심시간에 부랴부랴 식사를 하고 서실에 들러 한 두장 적고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