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아우에게 (09.10.13)-천관산 2009

2009.10.14 09:00

조창익 조회 수:510

2009. 10. 13. 화요일 맑음

가을, 천관산 2009

참 좋습디다.
천-관-산
하늘갖뫼-

그곳엔
사람을 한 줄로 세우는 법도 없고
삶을 찌그러뜨려 장난치는 법도 없고
힘들면 쉬었다 올라오라 하고
제 색깔 순연의 어울림으로
뿌리는 뿌리로, 이파리는 이파리로
작고 큰 대로
제 자태로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빛나는


서로에게
경배하는
존엄한
저 산

  아침 일찍 의료원 개원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접수하고 물리치료실로 올라갔다. 이제는 익숙해진 조합원 물리치료사께서 뜨끈한 팩에 전기온열, 지압 등등 몸을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셨다. 한결 나아졌다. 몸에 온기가 돌아 가뿐해진 몸으로 영산강 하구둑을 빠져나간다. 간 밤 늦은 시간까지 잔업 피로에 지친 금속 동지들이 회의를 채 마치지도 못한 채, 졸고 있던 모습은 참으로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대불의 노동자여, 10.28에 모이자.' 손으로 검은 색 물감으로 굵직하게 쓴 현수막이 확 눈에 들어온다. 이른 시각 아침 6시반부터 7시반까지 선전전을 펼치자고 결의했던 어젯밤 회의였다. 대불은 그렇게 변화와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꿈틀대는 기지로 진화하고 있었다.

오늘은 일제고사, 사람을 오그라들게 만들고 세상을 병들게 하는 몹쓸 시험. 아침 등굣길에 교문에는 선생님들이 일제고사반대 일인시위 등을 전개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남도 수 백리 치료 원행을 떠나기로 했다. 마음 치료, 몸 치료. 나 대신 시험감독을 하는 선생님들의 수고로움이 자꾸 눈에 밟혀 마음 한 켠이 무거웠지만 일제고사 투쟁으로 해직 정직 등 징계교사들의 발걸음에 촌보의 보탬이 되는 길, 근본 저항을 통해 제도의 무력화를 시도하는 것, 자연스럽고 광범한 연대와 참여 조직 등 다시 시작하는 마음올 첫 걸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난 길을 떠난다. 차창에 부딪는 가을 정경이 눈물 겹다.
편백나무 향이 싱그럽다. 박, 신, 김, 조, 강 등 우리 일행은 느린 걸음으로 톱밥 길을 걷고 편백의 숲길을 만끽하였다. 이마가 나처럼 너른 강 동지는 정직 징계로 지난 달, 월급이 본봉의 30 프로, 이것저것 떼고 받은 돈이 30만원이었단다. 가슴이 쓰윽 아려왔다. 내 호주머니에 복사본으로 간직하고 있는 남도택시 조합원들의 월급명세서도 수령금액이 많은 사람이 30만원, 아예 단 한 푼도 적혀있지 않은 사람도 둘이나 된다. 생존권을 위협하는 강자의 횡포. 오직 정직한 저항만이 굴종을 강요하는 자들에 대한 유일한 복수의 길 임을 우리는 안다. 우회로가 없음을 우리는 안다. 케이 선생은 정직하다. 그는 우회로를 모른다. 술책을 모르고 타협을 모른다. 그의 길이 옳다. 그래서 주변이 버겁다. 끝내 아이들과 함께 할 것이며 함께 해 왔다.

고흥 산사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 도화 벌판에서 벼베기를 하고 탈곡 체험을 하고 밤에는 천체 망원경으로 별보기 학습도 한다. 올 봄 지리산 산수유 밭에서 아이들이 꽃처럼 예뻤다. 섬진강변 벚꽃길에서 교실을 벗어난 아이들은 은어처럼 팔딱거렸다. 고흥의 아이들도 반짝거릴 것이다. 많은 말을 적지 않고 남겨둔다. 부끄럼 많은 새악시처럼 빠알간 홍시 얼굴로 천관산 자락 타고 수줍게 가라앉는 일몰광경은 장관이었다. 일행은 천관산 문학공원을 산책하고 고택을 방문하고 느린 걸음의 미학을 서로 나누면서 가을 기행을 마쳤다. 내일 서로 연락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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