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아우에게 (09.10.17) - 무안 해제 양매리 농활

2009.10.19 14:54

조창익 조회 수:515

여보게, 친구-.

양매리,
양평에서 어떤이가 내려와 매화나무를 심었다지 아마.
그래서 양매-
내 보기엔 양파에서 딴 '양'자가 더 어울릴 듯 한데 말이시.
어찌되었건 소위 농활이란걸 다녀왔다네.
양파 모종하고 난 후 플라스틱 모판을 걷어내서 묶는일.
이게 내가 했던 처음 일이고,
이 일도 제법 신경이 쓰이더라고.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진보의 땅을 일구러 떠났다네.
그저 아주머니들은 말하기도 전에 워매- 이놈의 세상이
뒤집어서야헌디-. 허면서 한숨 내쉬면서 민노당을 말하고
세상을 질타하고-
만약 정치적 목적이라면 아니와도 될 마을이다 싶었지.
그래도 하루 해가 금방 저물갈 무렵
해제 해넘이가 갯바람 껄끄럽게 싹 몰고 서녘으로 들어갈 즈음에는 말이시
허리가 뻐걱거려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집중해서
일을 했더란 말이시
팥밭을 맸더라네.

한 천 오백평은 족히 되어보였던 그 땅에서
영암군청에서 산업계장을 지낸 바 있는 입담 좋은 지부장님,
윤 국장, 최차장, 손 국장, 박 지회장 다들 입심 좋게 바람 속에
가난하지만 정직한 삶을 흩날려보내고 있었더라네
저 위쪽으로 신사 전교조 정 지회장, 김 선생, 민노당 김 조직,
참 귀한 사람들 눈매를 보는 행운의 주말이었더라네.
해제 양매 언덕을 쉬임없이 내려갔더라네.
그이들은, 저 아낙네들은 날마다 하는 일을
우리는 어쩌다한번 해놓고 나선 참 안쓴 근육썼다고 퍼걱거리며
막걸리도 마시고 횟감도 몇 점해대면서
희희덕거리며 음풍하고 농월했다네.
무릉도원이 따로 있당가.
어느 한적한 토요일 오후녘 우리는 몸을 뒤돌아보고
흙을 되새기는 귀한 성찰의 시간이었더라네.

내 어렸을 적 아비가 부르면 어떻게든 도망칠 궁리만했던 적 있었지.
이놈의 일을 하기가 싫었던 거야.
나보다 힘센 염소 풀뜯기는 것도 힘들었고
소 깔베오는 일도 힘들었어.
어려서부터 리어카끄는 일은 이골이났지.
지금은 눈물겹도록 돌아가고 싶은 유년의 발자취이지만
하-
그땐 말이시-
백수집 태선이는 부자여서 일안하고도 계란도 먹고
찐빵도 맘대로 먹고
텔레비전도 맘대로 보는데
흐-
밥 먹고 살았었는데
난 왜 그렇게 놀고 싶었는지 몰라.
내 친구 한섭이,
녀석은 집에 먹을 게 없어서 맨날 고추장만 먹었대.
그래서 똥을 싸도 맨날 피똥만 싸는 거야.
고추장색깔, 똥-
한섭이보면서 그래도 나는 낫다.
너보다는 내가 잘먹고 사는것 같다. 이렇게 위안했던 것 같아-
참- 그땐 왜그렇게 못먹고 그랬나몰라.
한섭이 아버지는 소팔러 장에 가시고
그렇게 해서
삼 형제 다 장하게 키우셨어.
이젠 돌아가셨지.
한섭이는 지금 광양제철 어딘가에서 일하고 있어.
오래되었네.
왜 지금 그가 생각나는지.
옆집 사는 귀한 친구였어. 쌈도 많이 하고.
녀석은 참 영리해서 한번은 욕하면 오원인가
십원인가 내놓기로 한적 있었지.
그런데 녀석이 내 공책을 가져가서 이름만 바꿔쓰고 지것처럼 쓰고 있는거야.
그래서 내가 야- 그거 내거다. 내놔라-. XX야-
한섭이는 '야- 증거있냐-. 증거있으면 대라-'  그리고 너 지금 방금 욕했지. 돈 내놔!!
옥신각신-.
난 그 때, 증거라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어.
거기에는 어떤 증거도 없었어.
그리고 돈도 빚지고-.
참 영악했어-.
그 순발력, 그 정도는 배워야한다고 생각했었지.

왜 이러는거야-
흙을 보면 녀석이 생각나서.
우린 논으로 들로 막 돌아다녔거든.
해제 양매리 그 너른 땅을 보니 녀석 생각이 나네.
콩밭을 보니 그 녀석 생각이나.
외국가서 돈벌어온다고 나갔다 들어온
꾀복쟁이 친구 정희도 보고싶고.
지금은 수목림 그득한 곳에서
유유자적하면서 나무가꾸면서 잘 사는데
요즘엔 연락이 잘 안되네-.

땅이란 정직해서
정성을 쏟아야 정당하게 응답하지.
땅한테 거짓말하면 안돼.
땅하고 싸우면 안돼.
땅은 물이야. 물을 거스르면 안돼.
땅은 모성이고 우린 거기서 나왔지.
다시 돌아갈 곳, 땅 위에서
우리가 제법 비칠비칠 팥밭을 한 두뼘 남겨놓고 다 맸을 때
민주노총 농촌봉사활동단은
흰색 티셔츠에 붉은 글씨로 써진
그 티셔츠를 땅거미에 허연 이빨처럼
훤하게 드러내보이면서
마을회관으로,
집으로 돌아왔더라네.

도농통합하면 농촌만 다 죽는다
함열사람들한테 가서 물어봐라-.
지금 피눈물 쏟고 있다.
통합되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반대의 기세가 등등하다.
딱히 통합할 이유를 못찾고 있는 것.
정치꾼들의 사특한 이익에 눈감아버릴 양이 아니라면
핏대 올리는 사연에 귀 기울여야 할터다.

난 해제 양매리에서
고향을 보았어.
지금은 희미해진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아픈 고향을.
농활, 자랑스러운 동지들을 뒤로 하고
현경 바다를 끼고 돌아서는 길,
난 어디로 가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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