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사랑하는 조선배님께

2007.02.01 21:50

누렁이 조회 수:1318

사랑하는 조선배님께


며칠간 심하게 아팠습니다. 그 덕에 오랜만에 선배님 생각을 하다 울었습니다.

참 오랜만입니다. 잘 있지라우?

벌써 서울생활을 시작한지 반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정신없는 서울생활이 지금은 많이 지쳤는지 몸이 아팠습니다. 며칠 누워있으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사람들을 겉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참 많이 미워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사랑하고 싶습니다.

조선배님
선배님이 논실마을학교를 떠난 뒤로 저도 학교를 떠났습니다.
‘왜 그랬냐?  그냥 그랬어라우.....’
사실 선배님이 학교를 떠난 뒤로는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온통 슬픔만 가득했지요. 학교에서 반갑게 반겨주는 사람도 힘든 일이고, 반갑게 찾아오는 사람들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내가 많이 힘들었지요. 잘 아시잖아요. 무슨 재미가 있어야 사람이 살제......

그래도 제가 속이 좀 있잖아요. 시집갔다가 몰래 친정 다녀가는 딸처럼 몇 번 가봤지요. 괜찮습디다. 그란께 선배님도 가끔 내다보고 거기 있는 식구들 잘 되라고 힘 좀 써주씨오. 그것이 귀신이 할 일이지라우. 영성?!......안 그라요?

아무튼 서울로 와서는 술도 많이 묵고, 술만 묵으믄 선배 생각이 나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서울이 좋은 것이 길거리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능께 술 묵고 노래를 불러도 뭐라는 사람이 없고, 미친 사람처럼 지하철에서 질질 울어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도 많이 한께 내가 쪽팔리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겨울이 왔습니다. 그래서 ‘인자 안운다’ 딱 그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웃음이 나옵니다.

조선배님
선배님이 꿈에 나올 적 마다  ‘어디 갔다가 인자 오냐고, 사람이 어디를 가믄 간다고 말을 하던지 해야지, 혼자 말도 없이 갔다가 이렇게 있으믄 어떻게 하냐고... 사람들이 얼마나 걱정을 하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데 그렇게 무심하게 왔다갔다 하냐고....’ 그렇게 성질을 냈습니다. 그렇게 잠을 깨면 얼마나 허망한지 모릅니다.

아무튼 저는 조선배님 덕택에 눈만 오면 슬픕니다.  
사람이 눈이 오면 첫사랑이나 첫키스 같은 달콤한 것들이 생각나야 하는데 선배님 땜에 슬픔이 먼저 생각나니 이것도 환장할 일입니다.

조선배님
돌이켜보니 당신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으짜요? 거기도 살 만하요? 나 같은 놈 만나믄 재미있을 것인디.....  
맨 투철한 신념으로 똘똘 뭉친 인간들만 있으면 퍽퍽 하잖아요.

근데 저도 요즘 퍽퍽한 인간이 된 것 같습니다. 좀처럼 웃음도 없어지고 그러네요. 사람은 변하는가봐요. 다시 웃음을 찾고 싶습니다.

제가 선배님한테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저 선배님이 보고 싶다, 참 선배님 무심하다, 진짜 무심한 선배님이다 그런 생각만 합니다.

당신만 따라가믄 되는 줄 알았는데......

조선배님
그래서 내가 딱 마음을 묵었습니다. 잘 살기로. 진짜랑께라우.


p.s.
보고 싶습니다. 거기서는 외롭다는 말 하지 마세요. 그것이 마음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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