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민들레처럼 살아가자꾸나!

2006.03.11 13:54

논실 조회 수:1706

조문익(장수군 번암면 논실마을학교)

용화야.
참 오랜만에 네게 편지를 쓴다.
벌써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구나.
아침에는 논실마을 앞 들녘에 허옇게 서리가 내리고, 사뭇 싸늘한 바람은 학교운동장 곁 감나무 낙엽들을 휘감아 대밭쪽으로 밀어내곤 한다.

장수는 참 좋은 곳이다.
아빠는 용화와 함께 장수에 들어오면서 여기가 내 고향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자질구레한 것까지 치면 이사를 이십여번 다녔으니 내게 고향같은 느낌을 주는 고장이란 각별한 것이다. 거기에다가 이곳은 아빠의 첫째 고향인 곡성 앞 섬진강 물줄기와 연결되는 요천 물줄기인 번암땅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사과도 맛있고, 바람도 좋고, 사람들도 따뜻한 고장이다. 아직 장안산에도 함께 못 올라가봤지만 억새밭이 그리 좋다니  한번 가보자꾸나.

용화야.
최근 엄마아빠가 모두 국제결혼 이주여성들과 함께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교육하는 민들레아카데미를 진행하느라 너희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적어 미안하구나. 바쁠 때는 너희들과 가장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쉬는 주말 목욕도 함께 못하는 경우도 있게되니 더욱 미안하다. 요즈음에는 아예 너희들에게 밥을 챙겨먹으라고 하는 일이 많아져 더욱 그렇다.

용화야.
그렇지만 이건 알아둬라. 나는 우리 가족들도 사랑하지만 민들레아카데미에 참여하는 국제결혼 이주여성들과 가족들, 특히 아이들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그것은 주민이 점차 줄고 있는 특히, 아이들이 정말 귀한 장수와 같은 농촌지역에서 자원해서 지역주민이 되어주는 자체가 희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년 20년이 지나면 지금의 아이들이 자라서 어엿한 지역주민이 되거니와 이주여성들은 남편들과 함께 장수토백이가 되어갈 것이니 그들과 함께 우리고장이 발전할 새로운 힘을 만들어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단다. 물론 그것 말고도 청정장수를 농업중심도시로 만들어갈 발전전략이 나와야하고 이를 뒷받침할 인재와 지원체계가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용화야.
우리 논실마을학교 운동장에 일년내내 피고지는 하얗고 노란 민들레꽃을 보면서 참으로 감동을 받는다. 민들레는 봄부터 가을까지 운동장 마당 곳곳에서 아름답게 피어난다. 그리고 꽃이 지면 바로 여리지만 까만 씨앗이 여물고 그 위에 하얀 낙하산머리를 두른 홀씨가 생겨난다. 그리고는 선듯 바람에 흩날려 다시 어디론가 날아간다. 그러다가 어느날엔가는 어김없이 다시 뭉툭한 뿌리, 푸르른 이파리들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노랗고 하얀 민들레 꽃들이 피어나고 햇볕과 함께 운동장을 덮는다. 아,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따사로운 시간이다.

아빠가 민들레꽃에 감동하는 것은 하나하나는 참으로 수수하지만 함께 옹기종기 모이면 대단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힘이란다. 아빠가 민들레꽃에 감동하는 것은 과감하게 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어디에든 날아가는 용기와 산자락이든, 들녘이든, 바위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어나는 소박한 정열때문이란다.

용화야.
아빠는 민들레아카데미에 참여하는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은 아시아에서 온 민들레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타일랜드, 일본, 중국에서 용감하게 날아온 민들레 홀씨들이다. 제대로 돌보아주지 못했는데도 용화민들레나 용창민들레는 참 아름답게 성장해주었지. 여전히 밝고 화창하게 스스로 자라고 있어서 너무나 고맙다. 그래 우리 모두 장수에서 씩씩하게 성장해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래줄거지? 다만, 한가지 약속하마. 아빠는 논실마을에 살고 있는 어린 민들레꽃들을 제일 사랑한다. 항상 따뜻하게 지켜볼거다. 그리고 일요일 목욕시간은 잘 지키도록 노력하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 행복을 우리가 만들어가보자.

* 조문익 님은 장수군 번암면 대론리 옛 대론초등학교 터에 자리잡은 <논실마을학교>에 살고 있는 주민입니다. <논실마을학교>는 지역밀착형 학술문화생활공동체 <논실마을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는 교육공간으로서 지역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사회문화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현선 학교운영위원님은 여기에서 사무국장 역할을 맡고 있고 현재 이지역 이주여성 사회문화교육프로그램인 "장수민들레문화교육아카데미"와 "찾아가는민들레교실"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nonsil.ne.kr)


<이 글은 조문익님의 큰아들 용화의 학교 교지(2005년 12월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