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고 조문익 열사-감옥에서 써놓고 못 부친 편지(1)(2004.1.28)  
글쓴이 조창익   2006-02-18 09:25:52, 조회 : 11


감옥에서 써놓고 못부친 편지인 듯합니다. 공유를 위해 정리해서 올립니다-조창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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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선배님께

날씨가 점점 풀리는 듯 합니다.
오전 운동시간에 운동장에 나가보니 햇볕이 닿는 쪽은 흙이 부슬부슬합니다. 우리 방에는 천장에 이슬이 맺히더니 새벽에는 한방울씩 떨어집니다. 어디에선가 봄을 오고 있는 것인지….

선배님,
징역사는 사람들이 신문을 뒤적이다가 제목만 훑어보고 던져버리기는 쉽지않습니다. 물론 囚人들 중에는 스포츠면이나 연예면만 뒤적이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당장 밖에서보다 꼼꼼이 신문기사를 익게 마련입니다. 우리 방 어떤 동료는 광고와 서평, 주식동향같은 내용도 세세하게 읽고 메모하거나 책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囚人들이 진짜로 제목만 보고 혹은 제목조차 보지않고 휙 지나가는 지면이 있으니 바로 정치면입니다. 정치에 아예 관심이 없는 가하면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나름대로 입장이 있는 사람들인데 이상하리만치 정치기사에 관심이 없고 읽지도 않습니다. 사실 저조차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회면이나 문화면처럼 꼼꼼히 읽지는 않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기사나 지면도 가끔 다시 읽을 때가 있게 되는데 그것은 징역생활에서 신문이 참 요긴하게 다양한 용도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룻동안 태운 쓰레기통을 비우는데 그 비운 밑바닥에 깔개로 넣고 배식이 되면 밥상을 펴고 그위에 1회용 식탁보로 사용하고 식후 양치질을 마치고 나면 방안에 신문 3장을 깔고 둘러앉아 면도를 합니다. 오전이나 오후에 간식을 먹을때도 받침으로 쓰지요, 신문은 요컨대 징역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생활도구인 셈입니다. 바로 신문이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에 수인들은 그때 신뭉을 다시 읽을 기회가 생기는데 정치면 기사들도 이때만큼은 대개 제대로 읽히게 마련입니다.

엊그제 면도시간에 우리방 신입자들 면도받침으로 놓여진 몇일전 신문 정치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목도 큼직한데다가 사진도 한컷 자료로 들어있어 눈에들어오는 기사였는데 왜 몇인전에는 못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더 관심을 끄는 것은 그 기사 내용이 ‘서울구치소의 범털들’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교도소에서 교도소관련 기사를 읽는 것은 색다른데다가 땡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기사내용은 매우 통속적인 것이었습니다. 「요즈음 서울 구치소에는 ‘범털’들로 미어터진다. ‘범털’이란 고급정치인, 고위관료, 재벌 기업인 출신의 죄수라는 뜻으로 쓰이는 구치소 은어인데 구정설날을 전후하여 서울 구치소에만 국회의원 8명, 전 장광관급인사 5묭, 재벌회장 2명 등 30여명이 넘는 대단한 ‘범털’들이 득시글거려서 왠만한 ‘범털’들은 독방배정조차 힘들고 구치소 주차장에는 고급세단들이 꽉 들어찼다」면서 주차장에 서있는 고급승용차들 사진을 실은 것이었습니다.

동료수인들에게 물으니 ‘범털’의 반대 말은 바로 우리들같은 평화동에 있는 대다수의 ‘개털’이랍니다. 확실히 저희들 대다수는 ‘범털’들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돈이 한 푼도 없어서 공중전화기 털다가 들어온 사람, 몇 십 몇 만원 때문에 들어온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어떤 방에는 두세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법자‘인 경우도 있답니다. ’법자‘란 법무부(교도소)에서 제공하는 하루 세끼 외에는 달리 다른 식품을 사먹을 수 없고, 관급의 의류와 모포를 제외하고는 입거나 덮을 수 없는 가난한 수인을 말합니다. ’법무부의 자식’이랍니다.
말하자면 평화동에는 대다수는 개털이고 개중에 개털중의 개털도 약간 있는 셈입니다.

선배님,
오늘 오전에 동료수인들과 법원의 판결과 형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한 사람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이야기를 꺼내자 판이 그냥 정리되어버렸습니다. ‘범털’들에 대한 기사를 읽고 몇 사람이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그 날도 그 ‘범털’들에 대하여 두 번 이상 욕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 ‘범털’들을 좋게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더러운 자식들 더 욕해봐야 내 입만 더러워지고 징역살이만 피곤해진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욕하고 비판해도 요지부동인 우리사회의 ‘부패의 철칙’을 이미 뼛속깊이 새겨버린 수인들은 아예 부당한 현실에 대한 분노조차 포기해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체념!!

선배님,
일찍이 푸코는 자본주의적 근대의 주체형성과정에서 학교, 병원, 감옥 등이 ‘자본주의 사회의 규율을 훈육하는 정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늬 감옥은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회 부적응자’를 ‘교정’하여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만들어나가는 소임을 맡은 곳에서 수인들이 「범컬」과 「개털」의 사회적 분단을 당연한 것으로 어찌할 수없는 것으로 체념해버리고 단지 지긋지긋한 감옥에 다시 들어오지 않을 ‘잔기술’만을 배우는 공간이라고 받아들인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범털」의 존재 자체가 한국사회의 비극이자 그 속에 깃들여 살고 있고 살아가고자 아등바등하는 민중들의 인간성 형성과정의 비극입니다.

선배님,
초짜들의 징역에서 가장 두려운 일은 동상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깊은 새벽에 일어나 뺑끼통에 가는 것입니다. 4.3평방에 14명이 누워있습니다. 모두들 환한 형광등아래 어쩌면 간신히 잠들었을 그 시간에 모포에 완전히 가린 수인동료들의 발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안간힘을 써야합니다. 무심코 그냥 발을 디뎠다가는 누군가의 어쩌면 동상으로 통증심한 발을 밟게 될지도 모릅니다. 비몽사몽간에 걷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입니다. 선배님, 우리는 언제쯤에나 우리는 타인의 사소한 고통에 몸서리치는 인간적 연대로 조성된 사회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그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건강하시기를 …    

2004년 1월 28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