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시] 나는 누구인가?

2006.03.10 12:56

이윤보다 인간을 조회 수:614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비뿌리는 삼천천 산책길을 소요하며
안개핀 다가공원 숲길을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잊어지든 잊어지지 않든 잊었다고 되뇌이며
흰 칼로 붉은 손가락 자르듯이 단호하게 일어선 나는 누구인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다.
광곡리 샆짝에는 이제 갓심은 쑥갓 싹이 피어올라
담벼락 아랫녁에 고즈넉이 몸을 구부렸다.
나는 누구인가?
아이는 둘이나 되고
아내는 아직 독립할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내 길만 가고자하는
그것만이 사람사는 길이겠거니 하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사랑도, 명예도, 재물도, 생명도, 가정의 행복, 인간의 윤리도 다 중요하지만
나는 그것을 갖지 않겠다며
천변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는 누구인가?
가지지 않은 것을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것이 조건임을 이미 알아차려버린 나는 누구인가?
그 속에 담긴 외로움과 추위마저 인정하고 수용한 나는 누구인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아!
사랑받는 존재로서의 '사랑하는 사람'이란 원래 없단다.
그 스스로 사랑할뿐, 사랑하는 대상은 없단다.
세상에는 객체는 없고 오직 주체만 있단다.
광곡리  안선생네 돌담에는 이제 연녹빛 벗어버린 감나뭇잎들
쟁쟁하게 손마디 흔들며 바람과 해후할텐데
해후는 멀마나 아름다운가?
어쩌다가 이렇게 만나 다음 순간 헤어진다고 말하지만
무엇이 만나는 것이고 무엇이 헤어지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나는 내 느낌만을 알 뿐이고
말할 수도 없구나.
생각으로 번역되는 나의 물음은 이미 해답
나는 누구인가?
질문만이 세상에 떠돈다.
발밑으로 풀잎들처럼 가볍게 뒹군다.
아아, 맨발이었더라면 풀잎들도 발가락사이로 유쾌하게 들어와 지저귈텐데
아아, 맨발이었더라면....

2000년 5월 22일  민주노총 사무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