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우리 동네 이주여성 이야기(1)

2006.03.11 13:21

만복이 조회 수:402

우리 동네 이주여성 이야기(1)
언어, 역사, 문화를 배우며 만드는 제2의 고향


으~ 이녀석이.....

안고있던 글로리의 아이가 응가를 했다. 왜 녀석이 계속 칭얼대고 우는가 했더니 결국 그거였다. 나는 기저귀가 축축해서 벗겨주면 되는가했다.  잠깐 편안해진 듯하다가 순식간에 숙련된 솜씨로 일을 해치운 녀석.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전북대 양승호박사가 한국인들의 “으” 발음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는 바로 그때,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으”발음을 많이 사용한다고 말하면서 입모양을 옆으로 쭉 찢으며 “따라해보세요. 으!”하고 말하니 아이엄마 글로리를 포함한 모든 이주여성들이 “으!”하던 그때였다. 왼쪽으로 무릎위에 누이고 젖병을 물리려 안간힘을 쓰던 그때.

아~아~. 몇 년만인가? 아이가 엉덩이에 힘을 주는 듯한 느낌이 확실히 왔다. 그랬구나. 허어. 일단은 아이가 다 눌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런 다음 장수군의제21 유금선 회장님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아이를 씻겼다. 공부하던 글로리는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가던 우리를 보고는 얼른 따라와 함께 씻긴다.

아이를 씻겨 엄마에게 맡기고 나는 옷을 닦기 시작한다.  우리 둘째아이 용창이가 벌써 여덟살이니 적어도 육칠년만에 아이의 누런 똥을 만지게 되고, 그것도 바지를 홍건히 적시고 속옷까지 젖은 상태에서 갈아입을 옷도 없어서 그냥 적당히 빨아야하는 상황. 대강 씻었지만 여전히 모양도 냄새도 남는다.  에이 ~ 그까이꺼. 여기 냄새 안나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라고 해.


이주여성 사회문화교육을 시작한지 두달이 되어간다.

야학하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80년대 초반 성당에서 진행하던 야학은 낯설고 들뜨고 설레었던가? 지금도 그렇다. 아무런 기대없이 줄것만 찾는다. 등록한 이주여성들만 47명. 우리 장수지역 80여명의 이주여성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오고 싶어했다. 인근의 진안과 남원에서도 몇명이 찾아온다.

항상 내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이주여성들 스스로의 열의가 밀고 간다, 이 양반들이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이리도 많으니 프로그램은 잘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주여성들은 민들레문화교육아카데미에서 즐겁게 지낸다.  

확실히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나의 이번주에 있었던 독특한 경험 - “으”하고 “응가” - 를 얘기할려는게 아니라 한국어에는 정말로 한국문화가 그대로 배어있다는 느낌을 이주여성들과 함께하면서 깊게 느낀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한국어를 배우는 여성들은 그 자체로 한국문화를 배운다. 사촌, 삼촌, 아버지, 어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왜 한국인들은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 가족을 그렇게 부르고 어려워하는지..... 한 달내내 가족관계와 호칭을 배웠는데 아직도 낯설다.


저번주에는 이주여성들과 함께 아이들과 함께 장수지역 문화들, 논개사당이나 팔성사같은데를 둘러보았다. 논개사당에는 논개를 설명하는 글들만이 아니라 잔디 빛깔조차 참으로 근엄하다. 여승들이 수도하는 팔공산 팔성사에는 물소리도 맑다. 이 분위기를 아는 것이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것이겠지. 유교와 불교에 대해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유교는 장수지역 문화에서 가장 잘 이해해야하는 철학이다. 사람들이 약간 보수적이라고 느껴진다면 그런 것은 대부분은 그분들의 개인적 성품이 아니라 유교에서 영향받은 것이다. 지금은 옛날 사상이 되었지만 한때는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 논개사당, 장수향교, 타루비는 모두 유교와 연관된 유적이고, 우리들이 공부한 가족관계도 대부분 유교적인 영향을 받아 규정된다. 불교는 특별하다. 불교는 한국인들에게 쉴 공간을 주고, 미래를 생각하게하며,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혹시 힘들다면 쉬러오라. 단아하고 다부지게 생긴 팔성사 주지 여스님도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말했다.

장수지역을 돌다가 수분재에 함께 올라갔다. 수분재 서북녘에는 금강의 발원지인 뜬봉샘이 있고 동남녘에는 섬진강이 시작된다. 이주여성들에게 말한다.

“한국의 다섯 개 큰강에 드는 금강과 섬진강이 모두 이곳 장수에서 시작됩니다. 이 강들은 모두 한국인들에게 소중한 강이지요. 그래서 물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이 고장을 ‘긴 長 long -물 水 water’라고 부릅니다. 여기 수분재는 물이 금강과 섬진강으로 나뉘는 곳이라고 해서 ‘수분(水分)’이라고 한 것입니다. 장수는 두 강물의 최상류니까 대단히 소중한 곳이지요. 여러분은 이곳의 주민으로서 이제 두 강의 발원지를 관리합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산이 많아서 가난하지만 산이 많으니 물이 좋고 고개가 많아 힘들지만 해발 500미터 이상이니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는 최고로 좋은 고장입니다“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통역하는 전북평화와인권연대 김미연 활동가가 영어로 다시 설명하니 그제서야 고개를 일제히 끄덕인다. “우리 동네도 산이 많았어요.” “우리 동네도”...... 이주여성 몇몇이 말한다. “봐요. 자기 고향하고 똑같죠?” 일제히 대답한다. “그래요” 대답이 씩씩하다.

“장수는 제2의 고향입니다. 자신의 고향을 잊어버리면 안되지만 장수도 자신이 사는 소중한 고향이 된 것입니다.”  
    
옛 가야인들은 19호 국도인근을 거쳐 장수 길목을 통해 진안 인근까지 나아갔던 것 같다. 팔공산이나 장계근처에는 가야계로 보이는 무덤들이 발견된다. 가야인들은 본래 특별했다. 약간 억지를 부려보자. 멀리 인도에서 배를 타고 이주해온 이주여성 허황옥과 본토인이었던 김수로가 극적으로 결혼한 역사며, 중심지역을 김해 금관가야에서 고령 대가야쪽으로 이동하다가 끝내는 아마도 일본으로 건나간 이주민으로서의 역사며, 힘을 상당히 갖고도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데 힘쓰기보다 무역으로 통합하려했던 역사며, 국가를 중앙집권적으로 통합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지방분권형으로 유지했던 역사들이 말이다.

물론 그런 요소들이 가야를 일찍 역사책에서 사라지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가야는 가야산만큼 아름답고 지리산만큼 장중하다.

이주여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행복하다. 사랑도 명예도 돈도 일도 생각지 않는다. 세상의 험한 꼴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단지 그녀들과 함께 즐거워할 뿐이다. 강의하는 양선생이야 힘들겠지만 구경하고 있는 나는 마음조차 한가롭다. 서너살 먹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자원봉사자들이야 힘들겠지만 그래도 나는 편안하다.

팔십년대 초반 친구들 등뒤로 구경했던 노동자들의 투박한 야학과 민주화의 희망이 아스라한데, 이제 이십여년이 훨씬 지나 이주여성들과 어울리는 웰빙형 야학에 함께하고 있는 나는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난 이주민처럼 아주아주 새로운 별천지, 새로운 아시아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    



- 조문익 /전북인터넷대안신문 참소리 운영위원
- <필자 주> 살림을 하고 있는 장수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주여성사회문화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중에 계속 이야기를 써볼까합니다. 계속 보아주시겠지요? 관심 가지신분들은 nonsil.ne.kr에서 ‘민들레’방을 찾아주세요. 소식지와 사진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2005-07-26 10:11:05   조문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