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우리 동네 이주여성 이야기 (2)

2006.03.11 13:21

만복이 조회 수:374

우리 동네 이주여성 이야기 (2)
민들레가족여름캠프 “우리는 장수에서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



7월 30일. 토요일. 드디어 여름캠프다. 이주여성들과 가족들이 모이는 민들레가족여름캠프!
얼마나 올까했는데... 조금 늦게 와서 그렇지 아이들 손을 잡고 하나씩 모여든다. 가방에는 옷가지와 간혹 먹을 것들을 정성스럽게 싸왔다. 멜리사는 아직 백일이 지나지 않은 아이를 안고 들어선다. 참 소중한 우리 아이들. 똘똘한 우리 모두의 딸내미 현진이가 동생을 안은 엄마 코라손과 함께 들어선다. 천천에 사는 이경식씨는 아내 제니와 정답게 들어서면서 천천 주막에 남편들이 모여 있는데 모두 불어와야겠다며 다시 길을 나설 태세.

모름지기 마음이 모여야 사람이 모이는 법. 민들레여름캠프에는 이런저런 가족들의 사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모여들고 있다. 열대여섯 가족 30여명의 대가족이 장수교회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라탄다. 유금선 회장은 차에 올라타서 논실마을 학교까지 오신단다. 밤을 함께 할 수 는 없지만 그래도 한번 와보시기는 해야겠단다.  

물뿌렝이 마을을 오른쪽으로 하고 금강수계에서 섬진강 수계로 넘어서는 수분재는 얼마전 장수지역문화기행을 하며 들어선 곳이서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유장한 수분재 상번암을 지나 하번암으로 내려서다 가볍게 논곡마을과 원촌마을 초입에 자리잡은 신원마을에 버스를 멈춘다. 논실마을 학교로 버스가 진입하기는 어렵대서 별수 없이 여기에 차를 멈추고 조금 걷는다. “논실마을 학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랑이 나뭇이파리들 사이로 펄럭인다.
      



먼저 오후에 이루어진 일은 일단 짐을 풀고 푹 쉰다음 한국음식을 함께 만드는 일. 주방을 책임진 이현선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 않은 로세마리 등 대여섯명과 함께 음식 만드는 회의를 진행한다. 오늘은 함께 음식을 만드는 날이어서 의사소통을 해가며 역할을 분담하는데 비중을 두었다. 약간 늦게 온데다가 일정이 안 맞아 천연염색은 이후에 진행하기로 했다. 대신 음식을 함께 만들고 나누는 데 시간을 할애한 것. 해는 저물고 주방에서는 수다와 음식이 무르익어간다.

짐을 푼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다니고,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이야기 나누느라 분주하다. 가끔 아이들이 방을 뛰어 나가도 조금 있다가 찾아와도 큰 문제가 없는 상황. 모처럼 여유가 흐른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리 재밌게 하는거요?”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스치며 눈인사를 할 때마다 즐겁게 웃는 이주여성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호남사회연구회 회장 소순열 교수와 논실마을사람들 운영위원장 이성호 박사는 주방과는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있는 사택 뒤편에서 이주여성들의 남편들 댓명과 간소한 안주에 막걸리를 기울인다. 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지... 누가 이런 교육을 하는지... 늘 궁금했던 남편들은 끊이지 않는 질문의 샘. 결국 총진행을 맡고 있던 나도 불려가 막걸리를 한잔 기울이게 되었다. 장수민들레문화교육아카데미에서 한국어강사를 맡고 있는 양승호 박사는 이주여성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만들고, 남편 박병섭 박사는 남편들과 역시 함께 자리를 함께 한다. 오늘의 자원봉사프로그램에의 결합은 이렇게 먹고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한편, 운동장 한켠에서는 진행팀 김준근씨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과 록밴드 “게릴라”가 한데 어울려 대나무로 얼키설키 달집을 만들고 무대를 만들고 앰프를 설치하느라 분주하다. 무대를 모두 만든 다음에는 앰프와 악기를 시험하느라 열심이다. 다 만들어진 달집은 의기양양하고 앰프들은 모두 준수하다. 해가 저물고 어스름한 운동장에 바람이 선선해진다.




장수이주여성의 맏언니격인 레오노라와 김종기씨 가족이 모두 논실마을학교 교정에 들어서니 마음이 푸근하다. 반갑게 맞아 나선다. 김종기씨는 민들레아카데미가 진행되는 때 기회가 되기만 하면 방문하여 무언가를 내민다. 그가 농사지은 무언가다. 농약도 안친 과채류들은 결혼한지 10여년이 다된 그들 가족들만큼 맛갈지다.

비슷한 시간. 천천 농공단지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필리핀계 젊은이들 댓명이 함께 학교에 왔다. 이주여성들과 가족들의 캠프가 있다하니 와보고 싶었다는 것. 원래 예정에는 없었던 것이지만 말이 통하는 고향사람을 찾아 장수에서 번암까지 택시를 타고 왔다니 반갑게 맞이할 수 밖에.  

저녁식사는 역시나 정신이 없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식사는 언제나 그렇듯이 정겹고 시끄럽게 지나간다. 한국문화공연을 하러 온 4명의 전주 시립예술단 식구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해가 어둑어둑. 식사를 마치고 나니 이미 저녁이다. 막걸리를 찬찬히 마시고 있던 남편들 그룹과 아이들과 푹 쉬고 있던 이주여성들이 모두 모여 즐겁게 식사를 한다. 설거지는 소순열 교수를 비롯한 막걸리그룹의 독무대가 되었다. 막걸리 마신 기념으로 모두 도맡아 설거지를 하겠다는 것. 기념비적인(?) 이날 설거지에 하늘도 놀랬나보다. 점차 어두워지며 비가 올 준비를 하였던 것인가?

7시, 한국문화공연을 할 시간이 되었다. 오늘의 한국문화공연 사회를 맡는 선수는 진행팀 김준근씨. 김준근 사회자는 먼저 오늘의 프로그램 순서를 설명한다.  “먼저 한국전통문화공연이 있을 것입니다. 전주시립예술단에서 나와서 아쟁연주를 하고, 나중에 대금연주를 들려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록그룹 게릴라의 야심찬 공연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민들레 가족들의 노래자랑을 하려고 합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함께 저쪽의 달집에 불을 붙이고 모두 소원을 빌거예요.”

전주시립예술단 김창선씨를 비롯한 3명이 공연을 시작했다. 김창선씨가 한국음악의 특징을 ‘한(恨)’으로 설명하자 통역역할을 맡은 양승호씨가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고개를 흔든다. 하기야 그리 쉽지는 않지. 정말로 ‘한’이란 것이 “special” 한 “emotion” 이거든! 어쨌든 먼저 중후하고 심금을 울리는 아쟁연주가 시작되었다. 바로 이어지는 대금 연주. 카랑카랑한 배경에는 쇠소리가 들어있었단 김창선씨의 설명에 절로 아하 그랬구나 하는 탄식이 나온다. 그렇지만 이주여성들이 알아들을까? 거의 처음 듣는 한국 음악의 선율에 귀를 기울이는 이주여성들과 가족들. 모두가 아늑한 저녁 분위기에 젖어든다.  




분위기를 확 전환했다. 록그룹 게릴라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빵빵한 전자기타와 드럼, 앰프의 지원아래 국경을 넘어 모두가 공감할만한 록음악이 울려퍼지고 70여명의 여름캠프 참가자들은 모두가 흥이 겹다. 보컬을 맡은 서원균씨가 막 내지르는 호쾌한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런데, 록그룹 게릴라의 공연으로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들기 시작할 즈음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한방울씩 빗줄기가 듣기 시작한거다. 에이그머니나. 이를 어쩐디야. 무대앰프는 모두 드러난 전선으로 연결되어있는데 비는 최악의 상황인거다. 가족대항 노래부르기는? 달집태우기는 어쩐다냐? 비데오녹화를 맡은 진행팀 노익선씨는 밧데리가 다되어 각정했는데 오히려 잘된 것인가?

가족대항 노래부르기는 하지 않기로 급히 정했다. 앰프를 철수하는 와중에 대신 사회자가 분위기 메이커 캐더린에게 노래 한곡만 부르라고 주문했다. 화끈하게 노래부르고 싶어하는 이주여성들을 대표하여 마이크를 잡은 캐더린은 음악을 주문했으나 이미 기타를 철수한 상태. 급히 나티가 핸드폰을 켜니 음악이 나온다. 핸드폰 음악으로 무장한 캐더린이 신나게 장윤정의 “어머나”를 부르고 나니 빗방울이 더 커진다. 흥겹게 몸을 움직이던 일부는 학교현관앞으로 이동. 그러나, 박수를 치며 캐더린에게 환호하는 우리 모두들.

진행팀이 쪽지를 들고 학교 현관앞으로 간다. 소원쪽지를 나누어주고 적으라고 한다. “행복” “건강”등등의 단어가 여기저기 들어있는 서투른 한글들이 엿보이는 쪽지들을 들고 모두들 빗방울을 무릅쓰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새기줄에 끼워넣고 나서 일제히 불을 당긴다. 빗방울에도 불구하고 마른 대나무에 석유까지 부어놓은 터여서 달집에는 불이 붙고 곧이어 활활 타오른다. 함께 소원 이루어지기를 바래며 지나는 시간들. 빗방울을 굵어졌다 가늘어졌다를 반복하며 교정을 감싼다. 그리고, 교실로 들어간 사람들. 모임방에서는 영화를 상영하고, 식당에서는 조촐한 술자리를 갖는다. 밤이 저문다. 이주여성들의 남편들과 계속 자리를 함께하며 밤이 지나갔다.

아침은 다시 함께 나누고 평가를 하기 위해 모인 시간. 모두가 좋았단다. 이주여성들끼리도 이렇게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본적이 없었단다. 나로서는 남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남자들끼리 한번 만날 약속을 잡은 것이 좋았는데.... 이주여성들도 역시 그랬던 것인가? 둥글게 둘러앉아서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정답다. 함께 사진을 찍고 나서는 시간은 아쉽다. 가족대항노래자랑대회를 못가졌으므로 호남사회연구회와 장수군 농촌발전기획단 식구들이 후원한 상품권을 모두 공평하게 나누어주었다. 대신 “어머나”를 부른 캐더린에게는 특별히 상품권을 두배로 줬다. 사실 액수로 보면 별 것도 아니지만 얼마나 좋아하던지.... 하긴 누가 이런 상품을 싫어하랴.  




달집태운 자리에는 새카만 대나무 재들만이 웅성거릴 뿐 조용하고 나도 그예 버스를 불러 모든 가족들을 집까지 태워주라고 부탁하고는 돌아와 조용히 쓰러진다. 진행팀 모두가 아마도 최선을 다한 그 밤. 논실마을 학교에서는 이주여성들과 가족들, 그리고 민들레문화교육아카데미 진행팀간의 신뢰와 애정이 ‘다른 장수’를 만들어가는 한 걸음이 되었기를 바랜다.

바로 2주후....... 민들레아카데미에 나오지 않은 멜리사의 집에 잠깐 들렀다. 그날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네미아에게 들으니 멜리사 아이의 백일이란다. 집에 들르니 멜리사는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려했는데 한글메시지 쓰는 게 서툴러서 못보냈다고 한다. “그러지말고 영어로 보내세요. 대강 읽을 수는 있거든요” 알았단다. 필리핀 음식을 차려놓고 꼭 한술 뜨란다. 그냥 잠시 들린 것이라고 말했지만 네미아, 멜리사, 레오노라, 모두가 권하니 스파게티하고 고기를 볶아 구운 필리핀 음식을 입에 대본다. 나름대로 맛있다. 더 먹고 싶기도 했지만 기다리고 있을 민들레 진행팀들이 마음에 걸려 그냥 일어선다. “잘 먹었어요. 애기 백일 축하해요” 오늘 교육 중에는 화기애애한 농담이 줄을 이었던 것처럼 이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안착되었나보다. 이대로~  가면.....새로운 아시아는 멀지 않은 거겠지.


- 조문익 /전북인터넷대안신문 참소리 운영위원

- <필자 주> 살림을 하고 있는 장수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주여성 사회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중에 계속 이야기를 써볼까합니다. 계속 보아주시겠지요? 관심 가지신분들은  nonsil.ne.kr에서 ‘민들레’방을 찾아주세요. 소식지와 사진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2005-08-17 16:06:24   조문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