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추석을 기대한다.

2006.03.11 13:25

만복이 조회 수:614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추석을 기대한다.
집중호우피해지역 직강화공사와 이주여성 교육프로그램을 생각하며



이제 가을인가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내가 사는 산간 들녘에도 누른 빛이 가득해간다.

무심타, 지난 여름 집중폭우피해를 잊고 있었는데 몇일전 장수, 진안등지로 차를 타고가다보니 몇몇 마을 제방은 여전히 흙더미고, 논밭엔 모래자갈이 가득하다.

농산촌 소하천 주변 피해지역에 대한 복구 과정에서 가장 흔한 것이 시멘트나 시멘트블록을 주재료로 하는 ‘직강화’공사다. 집중호우의 피해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치수 수단으로 채택된 ‘시멘트 + 직강화’ 공사는 박정희 시대이후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는 트랜드이다.

그러나, 다른 면을 보자. 시멘트로 척척 발라 소하천 양쪽을 높다랗게 쌓고 물이 속도감있게 치고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면 하천경관은 단순해지고, 물 자체의 자정작용은 둔화되고, 각종 동식물의 서식처기능을 잃어간다. 농산촌의 소하천이 도시의 하수구와 별 다를바 없이 되어간다. 사업의 옳고그름을 떠나 최근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하천의 생태적 재자연화 기법이나 청계천, 전주천이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직강화공사가 만능이 아니라는 소박한 지혜의 소산이 아닐까?

그런데, 최근 중앙부처인 여성부, 문화관광부, 행정자치부등이 주관하는 이주여성들에 대한 수많은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직강화프로젝트’ 냄새가 날 때가 있다는 거다.

이주여성들에게 한국문화와 한국말을 가르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주여성들이 본래 갖고있는 자그마하지만 소중한 문화적 자원들을 소홀히 하고 이루어져서야 되겠는가?

사실 그녀들은 이미 본국말을 충분히 익힌 성인이어서 한국말을 배워도 같은 연배의 한국사람만큼 잘하기는 힘들다. 교육해서 2등급, 3등급 한국인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녀들이 한국말과 한국문화에 익숙하지 않아도, 자기나라 본국말과 문화에는 매우 능숙하다는 사실을 소중하게 여기고 이를 교육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가끔 어떤 프로그램들은 “고 까잇거, 한국사람 만들어불자”고 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산촌 농촌의 소하천이 도시의 골목길 하수구와 별다를 바 없이 직강화되고 복개되어있다면 누가 산촌, 농촌을 정겹게 찾을까? 이주여성들은 한국사람과 똑같은 사람으로 대접하되 동시에 다른 언어와 문화에 능숙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앙상블’한 국제가족이 탄생하는 것 아닐까?

하나되는 것을 추구하되 다른 것을 인정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철학을 발휘해보자. 한가위 추석날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고향 소하천을 소하천답게 가꾸고, 이주여성들을 한국인인 동시에 본국문화를 품에 안고온 다른 나라 친선대사처럼 대하면 좋겠다.


- 이 컬럼은 전북일보 2005. 9. 13일자에도 실렸습니다.
- 조문익(참소리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