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소리] 존경하는 O 선배님께 (5)2006.03.11 13:47 존경하는 O 선배님께 (5) 뜨거운 온수 1분의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2004-02-02 18:30:05 <편집자 주> 필자는 민주노총 전북본부 전 사무처장으로 지난 해 노동열사투쟁과 노동사무소 시위 건의 책임을 지고 자진출두해, 현재 전주 교도소에 구금되어 5년을 구형받고,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O 선배님. 인도에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뭄바이에서 열린 제4차세계사회포럼(WSF)에 문정현 신부님과 함께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전개해온 反(반)신자유주의 운동이나 반전평화운동이 세계적 사회운동들과는 어떻게 접합되어야 하는 것인지 방향을 가늠하셨으리라 생각하니 선배님의 高見(고견)을 한 번 들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언젠가 한번 기회를 주실거죠. 인도에 가신 기간이 구정 설날 연휴와 겹쳐 명절을 외지에서 지내셨겠네요. 저는 이렇게 서신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건강하시라고 인사 띄울 수밖에 없네요. 부디 2004년 한해도 상쾌하고 활기차게 지내시기를 빕니다. 선배님. 지난주 토요일에는 전북지역에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해왔던 J, H 선배가 면회를 왔더랬습니다. 구정연휴 뒷날이라 감옥에 와 있는 후배가 맘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헤아려보니 그 양반들은 22년 전에 제가 지금 거처하는 평화동에서 징역살이를 했더라고요. 22년 전에 광주학살 원흉 전두환 퇴진 데모를 하다가 평화동 교도소에 복역을 했단다 토요일 아침 일찍 면회온 그 선배는. 높은 담장위에 앉아 당당하게 안팎을 번갈아 두리번 거린다. 회색 비둘기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이먼앤가펑클의 기타반주는 슬프다. 서있는 사람은 본래 슬픈 것. 이십여년이 지나도록 뜻을 같이 한 사람들은 연이어 감옥에 오고 락 발라드는 음악아는 사람들만 듣는 것이 아니다. 하염없이 철창옆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눈물은 흐르고 채 녹아 흐르지 않는 겨울 殘雪(잔설)위에 비추이는 따스한 햇볕. 그리운 동지들 [두리번거리다. 04.1.24] 그 선배들이 가시고 나서 갑자기 O 선배님도 보고 싶고... 수많은 동지들이 그리워졌습니다. 하하. 선배님.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평화동에서는 1주일에 한차례 목욕시간을 줍니다. 목욕시간이 주어지는 토요일 오전이 되면 미결수들 모두가 활발해지고 기분들이 좋습니다. 왜냐구요. 따스운 물로 씻는 것만으로도 개운해지니까요. 대략 7평되는 공간에 20여명 정도가 들어가면 우선 2분 정도 온수가 쏟아집니다. 그 다음 1분 정도 비누칠 할 시간을 주고 다시 2분간 샤워기가 작동합니다. 그러다보니 충분히 씻지는 못하지만 따스운 물로 샤워라도 하는 토요일 오전을 모두들 행복해 합니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너무나 추웠던 터라 송수관도 얼어붙고 가압펌프도 이상이 있는지 미결사(刑(형)이 미확정된 囚人(수인)들 사동) 목욕탕을 사용하는 것이 안된답니다. 하여 대신에 미결사동 옆에 이는 기결사(刑(형)이 확정된 囚人(수인)들이 거처하는 곳) 목욕탕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속옷을 보두 벗고 겉에 죄수복만 걸친 채 고무신을 신고 30여명씩 모듬을 지어 건너갔습니다. 원래 기결수들은 목욕시간이 15분씩인지 탈의실 안내판에 15분짜리 목욕탕이용안내문이 쓰여져 있습니다. 내심 15분씩 주면 얼마나 좋을까 했는데 좋다가 말았습니다. 5분정도보다 조금 더 준다는 겁니다. 그런데 20여평 되어 보이는 목욕탕에 들어가 천장의 샤워기 밑에 선 뒤부터 한번도 샤워기가 멈추질 않고 온수가 쏟아지는 겁니다. 꿈결같은 목욕시간이었습니다. 5분도 훨씬 넘겨 온수가 나온 것 같습니다. 인심좋은 소리(囚人(수인)들의 관리를 위해 각 舍居(사거)에 배치되어 교도관들의 업무를 보조하는 선발된 기결수들. 일본말 淸掃(청소)에서 온 말)들이 시간을 더 준 것인지 본래 방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결수들은 모두들 입이 찢어집니다. 목욕다운 목욕을 했다고 깔깔대고, 나이든 수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몇년은 더 젊어진 것 같다고 희희낙락 댑니다. 이렇게 조금만 좋아져도 저리 만족해하는 사람들이라니. 선배님. 平和洞(평화동)에 오기 전에 전주시와 완주군 등지에서 대기업이나 외자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50억원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자치단체조례'를 제정하느라 분주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2% 경제'로 상징되는 전북경제현실을 생각해 볼 떄 '기업유치만이 살 길이다'고 외치는 경제인들이나 행정가들의 입장을 전혀 이해못할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실업률과 자살률이 전국 최고 수준인 우리 지역에서 아마도 딱 잘라 1000만원만 지원하면 일할 희망도 엿보고 죽을 결심도 접는 일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면 씁쓰름한 것을 어쩔 수는 없을 것입니다. 50억원이면 무려 실업자의 자살예비와 가족 500가구 1500명의 죽음과 절망을 걷어낼 수도 있는 돈이라는 것을 왜 우리는 종종 잊는 것일까요. 혹시 작디 작은 도움을 제끼고 '원대한 미래'만 꿈꾸다가 공허한 삶의 가장자리를 맴돌다 마는 것은 아닐까요. '나중에 잘 살게 해줄테니 지금은 불행을 견뎌달라'는 정도를 넘어서서 '현실의 불행은 불가피한 것이고 일부의 불행은 필수적이며 원대한 구상의 실현 없이는 결국 행복은 없다'는 식의 公的(공적)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민중들을 비참하게 하였습니까? 번지르르한 수식의 算術式(산술식)을 던져주는 것보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정치, 그런 정치를 만들어가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역사 속의 민중들은 항상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었죠. 역사속의 주체들은 현실의 사소한 문제들을 통해서 巨大(거대)한 歷史(역사)의 뿌리에 접근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러한 뿌리의 밑바닥인 모세혈관을 적시는 뜨거운 온수샤워를 단 1분만이라도 더 맞아 본, 그 행복을 맛본 囚人(수인)들은 이미 현명하게도 역사의 진실을 아는 민중들이 아닌가 합니다. 선배님. 요즈음 눈이 많이 내리고 大寒(대한) 즈음해서부터는 사뭇 추웠습니다. 전번에 눈들이 많이 내릴 즈음부터 구정이 지난 지금까지도 약간씩 감상적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이런저런 느낌을 조용히 더듬어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탓입니다. 제가 원래 이런 感受性(감수성)이 있는 편인데 번잡하고 일이 많을 때는 거의 잊어버리고 살다가 요즈음 조금씩 鮮然(선연)해지는 것 같습니다. 부옇게 성에 낀 유리창 너머로 수은등이 빛나고 머언 불빛에 정적이 흐르는 눈물들. 눈발들은 아우성치며 높은 담장을 넘습니다. 세월이란 진실을 찾아내는 용광로. 스산한 바람들은 발갛게 달아오른 추억들을 데리고 와 창틀을 흔들어 댑니다. 미결2사5방에는 내쉬는 숨결인 하얗고 짤막한 애정들처럼 칼칼한 옥. 동구밖 대이파리들은 서걱이며 몸부비고 있을까요. 平和洞(평화동)에는 평화는 아직 안오고 寂寞(적막)만 서성입니다. [평화동에서 1] 창살너머로 눈보라가 일렁입니다. 凍傷(동상)으로 아리아리한 발가락들이 조물대며 새벽에 일어납니다. 밤을 하얗게 새운 형광등이 囚人(수인)들만큼 파리합니다. 住所不明(주소불명)의 선량한 사람들만이 자리에 누운 새벽. 사랑한 것이 죄였을까요. 서성이는 사람들은 눈발이 외롭습니다. [평화동에서 2] 선배님. 부처님이 중생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면서 '大慈大悲(대자대비)'라는 말을 사용했잖아요. 저는 '사랑'을 표현하는데 왜 굳이 '슬플 悲(비)'자를 사용했는지 못내 궁금했었습니다. 요즈음 나이가 들어가니 조금씩이나마 '한없는 슬픔(悲)'으로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느낌이 옵니다. 엊그제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연보>에 20대 임금 노동자 4백만8천명 중에 임시직과 일용직, 즉 비정규직 노동자가 2백만 1만 3천명으로 50.2%가 넘었고, 이는 92년에 38.8%였던 것이 IMF 이후인 98년 46%로 급증하여 점차 늘어가는 추세라고 하였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런 기사가 수치만으로 기억된다면, 그 수치 밑바닥에 짓눌린 젊은이들의 절망과 좌절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 되겠습니까. 요즈음 접견오시는 분들을 보며 감사하고 그만큼 슬픕니다. 눈물나게 고마운 동료들, 선후배들, 가족들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운동속에서 자신을 갈무리하고 전진해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 '한없는 사랑'에 한없이 슬프고 고마울 뿐입니다. 더 많이 슬퍼하고 더 사랑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선배님의 건강 기원하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2004년 1월 27일 저녁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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