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주여성 이야기(3)2006.03.11 13:22 우리 동네 이주여성 이야기(3) <민들레학교>떼거리로 남원 5일장을 보다 한분이 이주여성! 이란 명칭이 이상하지 않느냐고 한다. 그래, 그럴 것도 같다. 그분 주장의 요지는 “이주노동자야 잠깐 와서 돈벌고 가는 이들이니 이주노동자란 명칭이 어울리지만 여성들은 결혼하여 아기낳고 정착하는 사람들이니 ‘이주’보다는 ‘정착’의 성격이 더 강하고, 개인으로서 살기보다 가족과 같은 집단을 만든다는 점에서 사뭇 다르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나도 헷갈린다. 몇일전인 9월 21일, 대전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여성결혼이민자’라는 명칭이 쓰이는 것을 보았는데 중앙정부기관과 무게있는 정책단위에서도 이주여성의 정체성을 드러낼 가장 효과적인 개념을 고민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아까 말했던 그분은 ‘인터피스커플’이라는 명칭을 얘기한다. ‘Inter - Peace - Couple'이라! 뜻이 좋다. 초국적의 시대에 국적을 넘어서는 관점을 가지는 것은 상당한 일이요, 아마도 국제결혼자는 ‘평화’와 ‘연대’를 생래적으로 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에 가서 요즈음 못나온 쯔끼다떼가 독도문제를 갖고 한국과 일본이 아웅다웅하는 꼴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게다가 혼자 오는 것이 아니요, 올때부터 ‘커플’로 강림하는 것 아니던가? 나도 이 개념이 끌린다. 남원 5일장은 4일과 9일에 열린다. 지난 9월 4일 우리 민들레가족들은 전세버스를 타고 남원장에 가려고 모였다. 1시가 조금 넘어서니 벌써 이미 시장 볼 준비가 다 된 ‘아줌마’들이 민들레아카데미 교육공간인 들샘에 가득하다. 나 안오느냐고 연락이 올 정도다. 다른 날보다 화장을 더해서인지 얼굴들이 훤하다. 옷도 잘 차려입었다. 아이들도 많이 데리고 왔다. 무엇보다 방안에 설레임이 가득하다. 너무 늦지않게 출발해야하는데 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마리셀이 따라가고파한다. 딸아이 지숙이하고 가고픈데 관광안내소에서는 4시까지 돌아와야한다고 했단다. 소장님께 전화를 했는데 소장님이 휴대폰을 놓고 잠깐 나가신 모양. 함께 일하시는 분에게 양해말씀을 드렸다. 5시까지는 돌려보내겠다고. 사실 이러면 오늘 일정이 너무 촉박해진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버스 안에서 겨우 소장님과 통화가 됐다. 소장님은 흔쾌하게 알았다 하신다. 너무나 고맙다. 남원 시장 공터에 도착하여 마리셀에게 알려주니 활짝 웃는다. 사실 오늘같이 어디론가 움직이는 날은 진행팀이 늘어나야한다. 장수군의제21 유금선 대표와 양승호선생, 김준근, 김근오, 김미연, 이현선, 조은산등 진행팀, 모두 총출동이다. 오늘은 특별 게스트로 토요일 밤에 논실마을학교에 오셔서 이주여성프로그램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 한국문화정책연구소의 장인자선생님이 함께 하여 진행팀이 늘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오늘 산서에 사는 ‘산서댁’ 들중 하나인 로세마리가 조금 늦어서 함께 장에 오질 못한 것이 아쉽다. 집에 전화해보니 출발은 했다는 거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우리가 장수를 출발한 뒤 10분쯤 뒤에 교육장에 도착했을 것이다. 한명을 도로 보내서 데려올까 고민했다. 김준근, 김근오선생과 함께 고민하다가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진행팀이 제시간에 모두 장터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스물 다섯가족이 참가했는데 버스안이 가득하다. 플로델리자 가족은 무려 4명이나 참여한 셈이니 뭐. 출발전에 배포한 학습자료를 담은 우리들의 소식지 <민들레이야기>를 갖고 버스안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 양승호선생이 한국에서의 전통시장(Trdditional Market)에 대해 얘기한 뒤 시장에 가서 사용할 말을 연습한다. “이거 얼마예요” “합해서 얼마죠” “다음에 올께요”같은 평상어(!)에서 “깎아주세요”같이 재래시장용 특수어(?)까지 몇차례 반복하여 연습한다. 결혼 5년차 이상되신 민들레가족들이야 알기도 하지만 이제 막 장수에 온 이들은 사실 왜 나물파는 할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에이, 그렇게는 안돼지“하는지를 절대로 모른다. 열심히 따라한다. 주의사항도 전달된다. 길잃지 말 것. 특히 남원장에 초행길인 사람들은 민들레아카데미 진행팀과 떨어지지 말 것. 아이들과 손을 놓지 말 것. 논실마을사람들 이현선 사무국장이 5일장에 대해서 설명했다. 추석이야기도 했다. 추석에는 장보는 것이 중요하다. 추석대목 장을 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도 애기했다. 장수 인근에서 가장 큰 장이 서는 남원 5일장은 사실 매력적이다. 지리산인근의 나물과 과일과 채소가 모여드는 곳, 섬진강을 타고 올라온 여수, 고흥의 해산물들도 풍부한 곳이 남원 5일장이다. 남원원예협동조합 뒷마당에 모여 참가자들을 네팀으로 나누었다. 기본은 동네별로 나누는 것. 서로 알만해야 하니까! 20여명이나 온 장수읍내 가족들은 무려 진행팀 5명을 붙였다. 어느정도 통역이 가능한 사람들이 둘이상 따라가야한다. 천천, 장계, 산서에는 각각 1명씩을 붙였다. 걱정도 있다. 카메라는 김근오선생에게 맡겼다. “에이 그까잇거 남원이 얼마나 넓가니?”하고 씩씩하게 시작한다. 잘 다녀와요. 나는 ‘산서댁’들과 함께다. 어물전과 ‘Dry Fish Market’를 지나 푸줏간을 지나는데 열심히 농사짓는 남편과 함께사는 마이라가 안에 들어가 이것저것 묻는다. 그러더니, 닭발을 사든다. “닭발을 샀어요?” “예” “무엇하려고요?” 마이라의 대답이 걸작이다. 하하. “남편 술안주 해주려고요” 인제 막 백일이 지난 아이를 들쳐업고 2천원어치 남편 술안주를 사는 마이라. 마이라 남편은 가끔 마이라를 교육장에 태워다준다. ‘농군’ 느낌을 확 주는 사나이다. “저도 잘 먹어요!” 고추장, 매운 것도 잘 먹는다고 마이라는 말한다. 산서댁들이 아이들 옷가게를 둘러보며 이것저것 뒤적인다. 아이들과 가족들이 그녀들에게는 소중하다. 지나가시던 할머니 한분이 내게 다가와 넌지시 묻는다. “저기 저 아낙이 각신가?” 하하 웃는다. “아닌데요. 저기 전부 다 친구들이에요” “우리 아들도 아직 장가를 못 들었는디, 나이가 사십이거든. 어디 참한 색시 하나 구해주먼 좋을틴디” 옆의 아주머니가 거든다. “그래요. 아, 요즘 딴나라에서 온 색시들이 부모 봉양잘하고 살림 잘한다고 소문 났드만, 뭐” 세상이 달라지긴 달라졌나보다. 시골 시장 인근에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아주머니들의 상당수가 이주여성들이고, 이주여성들에 대한 시골 할머니들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장터나들이 중간쯤에서 산서댁이 아니라 장수댁인 카테린느를 만났다. 카테린느가 말한다. “선생님. 이마트 쪽으로 가면 안되나요?” “왜요. 거기에서 살 것이 있나요?” “예” 그러면 가야지 뭐 별수 있나. 마리셀, 카테린느등 몇사람이 남원시장 바로 옆 이마트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는 길에 몇사람이 더 합류한다. 어라 오늘의 특별게스트 장인자선생님이 장수댁들과 함께 오고있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 대부분 자기 나라의 도시지역에서 생활해온 이주여성들은 말도 잘 안통하는 재래시장에서 너스레를 떨면서 좋은 물건을 고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재래시장보다 이마트처럼 아무말 없이 물건만 내밀으면 알아서 계산해주는 이마트 같은 곳이 편한 것이다. 그럴만하다. 이미 장수에서도 읍내시장보다 싱싱마트나 하나로마트에 자주 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랴부랴 사람들을 채근하여 버스로 돌아간다. 마리셀을 5시까지 데려다주어야하는데 늦어지고 있으니 초조해진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에서 구박을 당하면 안되니 말이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럴 때는 한사람이 더 중요하기도 하다. 버스에 돌아가니 제니가 와 있다. 아니 이게 웬일? 오늘 버스를 안타서 “오지 않나보다. 이상한 일이다” 했는데 남편 이경식씨가 차를 몰고 남원까지 와서 합류했단다. 대단한 남편에 대단한 제니다. 감동! 원래는 소감나누기를 춘향테마파크에 가서 잔디밭에 앉아서 하려했는데..... 아쉽지만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하기로 했다. 함께 모여 시장보는 것이 너무나 좋았나보다. 장인자선생님이 먼저 내리고, 우리들은 소감나누기를 계속한다. 번암 즈음에 이르자 모두 한마디씩 돌아갔다. 제니하고 노닥거리는데, 제니가 음식을 잘한다는 소문과 관련해 얘기 나누었다. 제니가 한국에 수입해오는 필리핀 바나나들은 푸르딩딩한 것들을 배에 싣고 오기 때문에 한국에 오면 억지로 익어서 맛이 없단다. 자기들은 바나나 안 먹는단다. 그래서 필리핀식 불고기전골 요리를 할때면 자기는 필리핀 바나나 대신 한국산 고구마를 쓴단다. 한국산 고구마를 써가지고 불고기전골을 만들어놓으니 오히려 필리핀 바나나 맛이 난다는 것이다. 진짜 요리사다. 우리 언제 함께 제니 집에 가서 왕창 먹자고 웃으며 말하니 제니가 선생님들과 동료들이라면 언제든 환영한다고 말한다. 이제는 잠시 산자락을 보면서 쉴 시간인가? ‘번암 앞 냇가에 은어비늘이 눈부시더라’는 ‘번천은린(磻川銀鱗)’의 산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오오 필리피노‘하면서 마이크가 춤을춘다. 타갈로그어로 부르는 노래. 제니, 그녀다. 아주 사람들을 선동하는구만. 무어라 타갈로그어로 외치니 아줌마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진행팀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느낌으로 박수를 친다. 천천댁 코라손의 이름모를 ‘잉글리쉬’ 팝송이 이어지고, 장수댁 릴리안은 ‘한국어’로 된 ’사랑의 미로‘를 부른다. 김수희 노래였던가? 계남댁 조안나가 저음을 쫙 깔면서 ”sunshine smile'이란 팝송을 부른다. 제니가 제목을 알려주니 간신히 알게됐지뭐. 세아이의 엄마 플로델리자가 팝송을 부르고, 최근 다시 나온 계남댁이자 아주 열심인 카테린느 - 장수 카테린느와는 다름 -는 ’찰랑찰랑‘을 멋들어지게 부른다. 카테린느는 메시지를 보내면 영어로 답을 보내올 정도로 열의가 있다. 나티가 ’훌라춤을 추는 ...‘ 어쩌고 하는 가사의 ’탬버린‘인가하는 노래를 부른다. 어쩌면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르지? 할 정도로 잘한다. 수분재를 넘어 하평 수남초등학교 근처에 올때까지 노래와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다언어와 다문화가 함께 어울어지는 버스안 이다. 참으로 행복하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이렇듯 자유롭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풍경화였으므로. 이주여성들! 아니, ‘Inter - Peace - Couple’들이여. 함께 계속 행복해버리자! -조문익(전북인터넷대안신문 참소리 운영위원) 2005-09-23 11:41:05 조문익 기자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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