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따뜻한 혁명가 조문익 ▒▒
 

[참소리] 존경하는 O선배님께 (3)

2006.03.11 13:45

참소리 조회 수:2432

존경하는 O선배님께 (3)
운동에 대한 자기성찰 - '폭력'에 대하여


2003-04-16 10:55:53


사위가 적막합니다. 스산한 바람소리에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습니다. 몇일전에 보내주신 이메일 편지는 미처 읽지를 못했습니다. 편지가 깨어져서 들어왔습니다. 다시 보내주시겠지만 못보아서 죄송합니다.

건강은 괜찮으시지요? 주변에 건강이 염려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즈음 들어서 커피를 끊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습관적으로 마시는 인스탄트 커피가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간데다가 그야말로 습관이 되어가고 있는 것같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그렇게 하기로했습니다.

일단 빈속에 커피를 안마시게 되니 뱃속이 편안한듯도 합니다. 무엇보다 제 스스로에게 무엇을 안하기로 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봄비 들락날락하는 계절에 삼보일배 수행을 하고계신 전사(戰士)들이 지키고있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약속과는 비교도 할수 없는 것이지만요.


이틀동안 비가 내리더니
정자나무 옆 매화꽃 이파리들이 많이 흩어졌습니다.
소리도 없이 다가온 봄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담벼락 산수유들은 여전히 단아하고
뒷산 진달래는 붉은 자태 아름답지만
미처 보아줄 일없이 그렇게 보냈습니다.
시절이 없으면 사람도 없는 것
사랑이 없으면 운동도 없는 것
아마도 허랑하게 시간만 보냈나 봅니다.
봄을 아쉬워하는 것은 아직 빗기운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시간에 목말라 눈물 축이는 장닭들만이 아닙니다.
제대로 못산다 싶어 새벽에 눈뜨고
아이들 가녀린 손가락들 매만지는
사랑에 목마른 모든 생명들은 그렇습니다.
바그다드에도, 해창갯벌에도, 우리 동네 산외(山外)에도
아직은 어질어질한 희뿌연 포연(砲煙)속
그리움을 아는 사람들은 지긋이 눈을 감습니다.

<봄날은 간다>


제가 요즈음에 폭력에 대한 생각을 많이하게 됩니다. 야만과 폭력의 세기, 이라크전쟁과 한반도의 위기 등이라 더욱 그렇게 되기는 하였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몇일전 쓴 시나 제가 최근에 선배님께 보내는 편지같은 것이 모두 요즈음 운동에 대한 저나름의 성찰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항폭력을 넘어서는 '반폭력'

사실 20여년이 되도록 여러 수준의 사회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폭력'에 대한 문제는 저의 생각의 언저리를 벗어나 본적이 없었습니다. '폭력문제'는  사회운동이 피해 갈수 없는 사회운동의 동기에서부터 표현방식에 이르는 전과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있습니다.

사실, 저의 경우 미증유의 폭력이라 할 수 있는 전두환, 노태우등의 '광주민중학살'에 대한 문제의식이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폭력'에 대한 관점은 여러차례 변하였습니다.

처음에 전두환이나 노태우등 그사람들의 폭력은 저의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어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그 사람들이 결과적으로는 저와 우리 사회를 올바로 이끌어주신 역사적 스승 노릇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87년 전후로는 시위와 군사독재정권의 퇴진전략에 대한 고민 속에서 '국가폭력' '비폭력' '대항폭력'의 문제를 고민하였습니다.

94, 5년경이었나요? 선배님과 함께 문규현신부님을 모시고 전북평화와인권연대의 전신인 '정의평화정보센터'을 일을 하면서 '폭력문제'에 대하여 '인권운동'과 '인권의 정치'의 시각에서 그동안의 '폭력'에 대한 관점이 조금 변하게 되었습니다. 정의평화정보센터일을 하면서 '사형제도폐지'에 대한 운동들을 글로나마 접하면서 전두환이나 노태우등 사람들을 죽인 사람은 죽어야한다는 생각이 변화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거지요.

97, 8년도에 다시 '폭력을 소멸시키는 폭력으로서의 반폭력'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대항폭력을 넘어서는 반폭력의 문제에 대하여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존경하는 선배님.

저는 처음에는 폭력이란 선배들이 면도날이나 주먹다짐으로 동급생이나 후배들에게 돈을 빼앗는 것으로 여겼고, 조금 자라면서는 총칼로 사람들을 죽이거나 아니면 쇠파이프나 화염병을 들고 나이어린 전경들을 두들겨패거나 전경차에 불을 지르는 것인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지독한 폭력이 제가 호흡하고 있는 이 자본주의 체제내에 거대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UN과 같은 사실상 '친미적인' 세계질서조차 무시하고 일으킨 부시의 이라크 침략전쟁조차 못막아내고 있는 인류가 얼마나 엄청난 폭력의 숙명적 굴레에 휩싸여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대통령조차 이제는 농지목적이 무의미해졌으니 새만금사업이 재조정되어야한다고 말했습니다만 그조차 현재까지 중단하지 않고 방조제공사를 계속하고있는 모습은 얼마나 끈질긴 폭력입니까?

2002년의 한 '폭력' 사건

선배님. 사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저는 따른 종류의 폭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작년 2월 22일, 전교조전북지부 앞에서 전주북부경찰서와 저희 민주노총전북본부간에 심각한 물리적 마찰이 있었던 것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관련해서 북부경찰서가 구속기소 의견을 내고 검찰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저를 비롯한 3인에 대해 기소를 하여 법률적 다툼이 시작되었고 저희가 올해 2월 7일 전주지방법원(재판장 오천석)에서 검찰이 기소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받았던 것도 아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지난 1년여간 저는 경찰과 검찰들의 이러한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폭력인가하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선배님.

1년여가 지났지만 그날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속에 분노가 은근히 남아있는 것을 느낍니다. 전주북부경찰서의 당시 D서장은 나중에 뇌물을 받고 구속되기까지한 사람인데 알만한 사람들, 심지어 경찰들조차도 모두가 그날 두현균서장이 상황을 잘못파악하였고 과도한 공권력을 행사하였노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저희는 오후 2시 집회를 앞두고 전교조 전북지부 앞 주차장에서 집회준비를 하고있던 중이었는데 비에 젖은 아스팔트 바닥에 깔기위해 집회물품이 들어있던 방송차량에서 스치로폴을 꺼내고 깔고 있었고 이때 어떠한 사전 예고절차도 없이 경찰병력이 급습하여 차량에서 텐트와 지주대, 플랑등을 빼앗아갔습니다. 이에 저희가 물품을 빼앗기지 않기위해, 그 다음에는 물품을 되찾기위해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였고 경찰들은 이날 열대여섯명의 집회 참가자중 12명을 긴급체포하여 불법으로 15시간여를 감금하였습니다.

'공무집행방해'와 '폭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지목되다

이날 사건은 정말로 어이가 없었고 노동자들은 분노하여 북부경찰서앞에서 집회를 가졌고, 2002년도에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변호사회전북지부에서 P변호사가 노력해서 법원에 사상유례가 없는 체포적부심을 신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날 체포적부심을 신청한 P변호사에 의하면 워낙 경찰의 불법적 행위요소가 많아 체포적부심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많은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15시간만인 23일 새벽 3시에 모두가 석방되었고, 연행자중 5명이 기소되었는데 그가운데 저는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나와 재판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검찰조사와 재판과정에서 저는 경찰이 넘긴 자료를 보게되었습니다.

아, 얼마나 가관이던지. 전주북부경찰서는 자신들이 불법적인 체포를 안했노라는 증명을 위해 저희가 온갖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다고 기술해내는데 총력을 다한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집회 시작전에 집회물품을 탈취하고, 이에 정당하게 방어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구타하고, 기어이 미란다원칙도 지키지 않고 불법연행하고 진술서를 받는 전주북부경찰서의 잘못은 간데가 없었습니다. 이를 감추기 위해 꺼내지도 않은 천막과 지주대를 꺼냈다고 주장하고, 전경들의 진술을 이용해 각목으로 전경들을 두들겨팼다고 주장하고, 주먹이나 발길질로 공무를 집행하는 전경들에 대하여 폭력을 행사하여 상처를 입혔노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일부는 분명히 사실이지요. 그러나 그들이 아마도 사후적으로 만들어낸 연행전 사전고지확인서(미란다원칙) - 자기들이 미란다원칙을 지켰다고 C경사가 쓴 보고서가 만들어져있었습니다 - 가 신빙성이 없었던 것으로 전주지법 재판부는 판단한 것만 보더라도 거짓말이 다분하게 섞여들어갔을 것임은 잘 알수 있습니다.

북부경찰서는 130여명의 전경을 동원하여 10여명만 옹기종기 모여 집회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무런 고지없이 집회물품차량을 덮쳤습니다. 천막을, 지주대를, 플랑들을 빼앗아갔고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몸으로 밀어붙였습니다. 넘어진 노동자는 군화발에 짓밟혔습니다. 우리는 기진맥진했고 천막을 돌려준다는 약속을 하면 몸싸움을 하지 않겠다며 정보과장과  경비과장을 만나 협상을 추진하고 몸싸움이 멈추어져 있는 중에 무전연락을 받은 전경들은 우리를 무차별연행했습니다.  

저의 경우 저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진술서를 작성한 전경들인 J상경은 제게 각목으로 구타를 당했고 바로 그 각목으로 다른 S상경을 구타하는 것을 보았노라고 하였습니다. S상경은 제가 각목을 휘둘러 자신의 머리쪽을 내리쳤고 분명히 내가 맞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실을 말하자면 저는 J상경을 각목으로 내려친 사실이 없고, 역시 차량밖으로 나가 S상경을 그 각목으로 내려친 사실이 없습니다. 그 분들의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일부러 그렇게 진술한 것인지는 잘모릅니다만 여하튼 저는 그날 연행자중 최고수준의 '공무집행방해'와 '폭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구속영장까지 신청되게 되었습니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은 최하 3년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는 중죄에 속한다는 사실을 저는 한참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선배님.

그런데 진짜로 당항스러웠던 것은 저희들을 기소하고 수사한 전주지방검찰청의 L검사의 태도였습니다. 그 사람은 상당히 젊은 사람이입니다. 그런데 그사람은 저희들의 죄지음과 경찰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별로 고민할 것도 없이 집회를 하려했던 사람들은 호전전이고 폭력적이어서 계기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불법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공무를 집행하려한 경찰들의 행위는 약간 무리가 있다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정당하다는 신념의 체계를 저는 보았습니다.

'공안검사!'인 그는 경찰의 주장대로 집회물품(천막을 말합니다)을 꺼내었기 때문에 불법이라 이미 통보한 그 물품을 수거하기 위하여 경찰병력을 동원한 것은 정당한 공무집행이다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부당한 국가폭력'에 대응한 '정당한 대항폭력'  

그러나, 저의 양심을 걸고 말하건데 2002년 2월 22일 12시경 그당시 저희는 천막을 칠 생각이 없었고 천막을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조사과정에서 분명히 그 L검사에게 당시 상황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 젊은 전경들이 우리들에게 맞았다고 진술한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저희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전혀 믿지를 않았습니다.

저의 양심 그대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누구인지는 모르나 차량안에서 천막을 빼앗으려는 전경들에게 발길질을 한 사실은 있고 천막을 빼앗기고 난뒤 경찰들에게 욕설을 전경들을 뒤쫓으며 천막을 내놓으라고 계속 몸싸움을 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봉고차 내부공간에서 천막의 한끝을 잡아당기고 있는 상황에서 천막을 빼앗기지 않기위한 몸부림이었고, 빼앗긴 천막을 되찾으려는 발악이었습니다.

제가 각목을 들고 전경들을 구타했다고 증언한 전경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L검사의 입장을 저는 아직도 이해를 못합니다. S상경의 경우 시위대 뒷쪽에서 날아온 미상의 '검은 물체'에 맞아 부상당한 것이라는 경찰의 다른 보고서조차 무시한채 오직 전경들의 진술에만 의지하여 저를 폭행혐의로 기소한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왜 그들의 말은 믿을만하고 왜 우리들은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물론, 그날 집회의 집행책임자가 저였고 만약 이날 모든 폭력치상의 문제를 누군가에게 물어야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한다면 제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J상경과 S상경이 저를 구체적으로 지목한 그 사실들은 받아들이기가 지금도 어렵습니다.

결국 전주지법에서 저희에게 무죄가 선고되었을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사실 L검사도 마지막 구형당시에는 '경찰이 다소 무리한 행위를 하였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만 일찍 그런 판단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노총전북본부 조합원들인 저희들은 이 사건으로 1년여의 시간을 법원을 들락거려야했고, 회의를 몇차례 해야했으며, 성명서를 몇차례 심지어 집회까지 해야했습니다. 없는 살림에 몇백만원의 돈도 들었지요. 그런 모든 과정들이 전적으로 손해였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L검사가 보다 진중하게 이 사건을 다루었다면 여러모로 좋지않았을까 합니다.

저는 제가 그날 겪은 사건을 첫째, 의도적이었든 판단착오였든 '부당한 국가폭력'을 자행한 전주북부경찰서 경찰들에게 '정당한 대항폭력'으로 대응한 사건이었고 둘째, '부당한 국가폭력'을 사용한 전주 북부경찰서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온갖 거짓말을 한 사건이며 셋째,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색안경을 쓰고 행정적으로만 업무를 처리하는 검찰의 무의식적 국가폭력'이 '정당한 대항폭력'을 사용한 노동자들을 1년여동안 괴롭힌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겁한 비폭력'은 '정당한 대항폭력'보다 못하다

만약 우리가 대항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천막을 빼앗기는 것을 방관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실제로 항소심에서 우리를 맡은 광주고검의 검사분은 재판정에 선 우리들에게 폭력혐의를 인정하라며 "설사 경찰들이 잘못했다손 치더라도 굳이 경찰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상처를 입힐 필요는 없었던 것 아니냐"는 투로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쟈크 데리다는 "비폭력은 어떤 의미에서는 최악의 폭력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것을 87년에 목격하였습니다. 87년 6월대항쟁때 비폭력을 외치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비폭력의 구호가 저는 비겁한 사람들의 구호로 들리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구호의 대부분은 언제나 최루탄을 쏘아대는 전경들에게 방패를 휘두르는 전경들에게 쫓겨다니면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진정한 의미의 '비폭력의 전형'은 도망다니면서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탱크앞을 가로막은 수녀들로 표상되는 필리핀의 피플파워나 최루탄이 비오듯이 쏟아져도 결코 자리를 피하지 않고 구호를 외치던 어떤 신부님의 모습, 당당하고 진실되게 비폭력을 위치며 사회변혁을 추구하던 간디의 모습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폭력'은 비겁한 비폭력과 용감한 비폭력이 있고 용감한 비폭력은 반폭력에 가깝지만 비겁한 비폭력은 정당한 대항폭력보다 못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비걷한 비폭력은 결국 제도화된 폭력을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자신은 그 순간뿐이겠지만 제도화된 폭력은 언제나 민중들을 또다시 그 폭력의 굴레에 휩싸이에 할테니까요.

저는 정당하지 않은 공권력행사에 대해 '비폭력'으로 대응했다면 그것을 훨씬 더 부끄러워 했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1년여간의 재판과정은 참으로 욕된 것이었고 영혼의 고통이 따라다녔음을 털어놓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번 저희가 고통을 받음으로써 부당한 경찰들이 민중들의 집회시위를 방해하거나 공격하는 것을 약간이라도 줄이거나 신중해지게 만들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선배님.

그러나, 저는 한편으로는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저는 그날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H일경의 경우인데 H일경의 경우 저에게 '맞아' 안경이 깨졌고, 제가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고는 말하였으나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감정은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당시 천막을 빼앗긴 상태에서 몸싸움을 멈추게 하고 현장책임자들과 면담을 추진하여 천막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으려하였던 저에게 H일경이 우리 조합원과 몸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저의 손바닥은 H일경의 머리쪽에 가 있었습니다. '분노'의 사슬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J, S상경의 경우에는 실정법상의 '정당한 대항폭력'이라는 수준에서 정당화된 것뿐만 아니라 저의 '제도적인 폭력을 중화(中和)-소멸시키는 폭력으로서의 반폭력(anti-violence)만이 정당하다'라는 저의 양심의 법정에서 볼 때도 제가 '반폭력'적 수준에 가까웠음을 여러차례 되새겨보아도 확신합니다. 그러나, H일경의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합니다.

H일경의 경우 심한 폭행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만 제가 그사람의 머리쪽을 가격할 당시 "내가 지역본부 사무처장인데 니까짓것이 말을 안들어? 몸싸움을 그치라면 그쳐야지"라는 오만한 마음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H일경은 아프지는 않았다해도 기분이 매우 나빴을 것이고 이것은 명백한 폭력입니다. 그래서 저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의 기소내용을 규정하는 '정당한 공무집행'의 요건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한다는 전주지법의 판단에 대하여 우리의 정당성을 입증해주었으므로 감사해하면서도 H일경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느낌을 갖게되었습니다. 제가 H 일경에게 사용한 폭력은 양심의 법정에서도 무죄일 '반폭력'은 전혀 아니고 실정법상에서 간신히 무죄를 선고받을 정당한 '대항폭력(contre-violence)'수준에도 미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유죄입니다.

존경하는 선배님.

그 뒤 저희들은 전주지법의 무죄판결에 대한 검찰의 항소로 광주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만 이번에는 기소내용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이 아닌 '폭력행위'였습니다. 검찰이 특수공무집행방해에서 폭력행위로 기소변경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주지법에서 선고를 하기 전에도 L검사는 "결과적으로 전경들의 피해가 있었으며 만약 기소내용이 달랐다면 유죄가 나올수도 있다"는 식의 의견을 말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4월 10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결과는 벌금형에 선고유예가 나왔습니다. 저는 재판 최후진술에서 '참으로 갑갑한 심정이다'라고 짤막하게 말하였습니다.

'특수공무집행방해'가 무죄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정당하지 못한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대항폭력을 그 결과만 고려하여 '폭력행위'로 볼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만 그러나, 제가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사실 그런 것이 아니라 검찰이 최초기소내용을 변경해서라도 '유죄'를 받아내야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철학(?) 또는 구조(?)입니다.

'유죄'를 받아내기 위해 최초 기소내용도 변경하는 검찰

검찰의 기소가 잘못되었다면 법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해야하는지, 기소변경을 해서라도 기소를 유지해야하는지는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보통 상식적인 수준의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검찰은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잘못된 기소내용으로 1년여동안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않겠습니까? 그런데 일단 검찰은 상식수준의 사람들 사이의 태도를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답답하였습니다. 광주고등법원의 판결 또한 검찰의 폭력행위 기소내용을 기소한 그대로 인정하였습니다. '사실'과는 상당정도로 다른 그 기소내용을 말입니다.

그런 기소내용에 대해 저희는 그냥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재판장은 우리들의 주장을 모두 다 안다고 하면서도 판결문은 도저히 우리가 인정할 수 없는 '폭력혐의'들을 적어놓았습니다.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재판투쟁을 그만두기로 하였습니다만 저는 우리가 '벌금도 안내는 처벌'(선고유예)을 받았다고 좋아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법조인들이 계시다면 다시한번 생각해보실 것을 권유합니다.

저는 이번 사건으로 경찰-검찰-법원등의 기관에 대한 실망감이 더욱 커졌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이번 사건으로 경찰-검찰-법원의 비윤리적 커넥션에 대한 절망감이 더욱 커졌음을 고백합니다.  

선배님.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비판'에서, 스피노자는 '정치학비판'을 통해 자본주의의 구조적 폭력에 대해 비판하였습니다. 그런데 구조적 폭력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저는 제가 당한 1년여간의 경험에서 저와 같이 사회운동을 하는 집단이나 활동가가 이 정도로 당하고 절망하기도 한다면 아무런 대응수단을 갖고있지 못한 개인들은 얼마나 짓밟힐 수 있겠는가 얼마나 극도의 절망감을, 패배감을 가질 것인가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구조적 폭력'을 유발하는 '폭력의 구조'

얼마전 노무현대통령이 일선검사들과 인사문제로 토론회를 하였을 때 저는 검사들의 말투에서 또다른 L검사와 광주법원에서 기소장을 변경한 모 검사를 보았습니다. 그날 토론의 내용이 누가 옳은 이야기를 한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검사집단의 모습이 친근하게 비쳐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저는 1심 재판과정에서 판사들이 그렇게 많은 사건을 그렇게 짧은 시간에, 당사자의 이야기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광주고등법원도 그랬습니다. 재판을 진행하기에 앞서 판사가 나오는 시간이 되면 모두가 엄숙하게 기립하여 재판부를 맞이합니다. 오전내내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판사들은 꿈쩍도 하지않고 화장실도 한번 가지 않고 재판을 계속합니다. 번호순대로 불려온 사람들이 재판을 합니다. 저는 검찰이나 재판부나 너무나 적은 수가 너무나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보일 리가 없지요. 실제로 일선검사들은 일이 너무나 많아 경황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업무를 검찰에 배속되어있는 직원들에게 맡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이런 모든 것이 '구조적 폭력'을 유발하는 '폭력의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제도가 이렇게 만들어져있으면 사법부는 민중과 거리가 있게 되는 것이 불가피해집니다. 민중과 거리가 있으면 그 간극과 공허함을 메꾸는 방법은 '앙상한 법조문'과 '형식들'과 '장치들'에 의지하는 방법뿐입니다. 그러면 민중들은 그것들에 눌려 제대로 이야기를 못하게 됩니다.

사법부는 위로 올라가고 민중은 아래로 내려옵니다. 민중들의 생활을 공정하게 조정하도록 만들어진 사법부가 민중들을 통제하는 '외부의 힘 = 폭력'이 됩니다. 무엇인가 제도상의 변혁이 이어야 자신도 모르게 폭력이 되는 '사회적 습관'들이 사라질텐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변하면된다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할만한 능력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그런 제도적 변화는 사실 내부에서부터 추동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도 '겸손한 대안'들을 이야기 해주면 좋겠습니다.        

최근 전주지방검찰정에 인사이동으로 부임한 검사장이 취임식을 가진 자리에서 “겸손한 검찰이 되어 차가워진 국민들의 시각을 바꾸는데 최우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권위주의를 탈피하는 노력으로 국민의 검찰, 국민을 위한 검찰,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검찰이 되자”이 되자고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진심으로 말 그대로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민중과 함께하는 검찰이 사법부의 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지난 1년여간의 경험에서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함께하는 것이며 모두가 함께해야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한국사회 구성원의 중요한 한 부위로서 검찰과 나아가 재판부의 노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선배님.

몇일전 법정스님에 대한 TV프로그램에서 보았는데 법정스님은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에 대해 '나는 나이고 싶다. 무엇이 되지싶지도, 누구가 되고싶지도 않고 단지 나이고 싶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감동적인 말씀이셨습니다.

'폭력'이라는 화두를 들고 자신을 찾아다닌 여행

만약 누군가 저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물으면 저도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인생의 전과정이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치면 지난 1년여간 '폭력'이라는 화두를 들고 제 자신을 찾아다닌 여행이었나봅니다. 저의 여행이 단지 활동가로서, 40대 남자로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만이 아니라 진실되고 당당한 '사람'으로서의 여행이 되었기를 간구하며 선배님과이야기를 나누어보고싶었나봅니다.        


밤새도록 내마음이
우르릉거렸다.
양철지붕 찢어지듯이 신음했다.
밤은 길었다.
진저리친 봄 雷雨 지나간 아침
들녘 보리밭엔
서러운 빛만 가득하다.
<春雷>



존경하는 선배님.

20여일째가 되어가는 삼보일배수행이 충청도의 어느 거리, 군산에서 익산으로 넘어오는 전군가도에서 흩날리는 벚꽃들과 함께 희뿌연할 봄날입니다. 창호지문살 밖에 햇님이 벌써 환해지기 시작합니다. 선배님.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면서 겨우내내 힘들었던 많은 분들에게 좋은 소식 전합니다. 봄입니다. 봄.


2003년 4월 9일 새벽부터 아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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